[청려문대] 잘자요, 고마워요, 그리고 또 만나요 (삼땡스): 24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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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지막한 오후.
곧 비가 쏟아질 것처럼 하늘이 우중충합니다.
아침부터 틀어진 TV는 열정적으로 온갖 광고를 토해낸 후에 늦은 오후의 뉴스를 송출합니다.
쉘터 안의 잡다한 소식을 늘어놓던 두 명의 아나운서 목소리는 지루할 정도로 단조로워서
졸았다는 사실조차 망각하게 만들 정도입니다.
마지막 소식입니다, 라는 말로 운을 뗀
한 명의 아나운서는 세상의 멸망을 고했습니다.
표정도, 목소리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아나운서는 일상의 편린을 읊조리듯 무감각이 보고했고
바깥은 고요했고
인공 빗방울은 사납게 유리창을 내리치기 시작합니다.
모든 것이 일상처럼 느껴질 만큼 끔찍한 안정감이었습니다.
떠들어대던 뉴스가 꺼집니다.
곧이어 들끓는 커피 포트가 김을 뿜으며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네요.
고개를 돌리면 당신의 안드로이드,
신재현이 손잡이를 쥐곤 머그잔으로 뜨거운 액체를 쏟아내는 것이 보입니다.
잔으로 쏟아지는 액채의 아우성 사이로 과거가 파고들기 시작합니다.
인류를 위한,
인류에 의한,
안드로이드.
당신만의 새'친구'를 만들고 싶지 않나요?
혹은 새로운 '연애 경험'을 하고 싶진 않나요?
지금이 바로 기회입니다! 이제껏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안드로이드!!
혁신적인 발명!!
안드로이드 '친구'를,
안드로이드 '연인'을 만들어보세요! 

!주의!
보급되는 모든 안드로이드는 저장된 수많은 특성 및 성격 등이 랜덤하게 분배되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안드로이드를 만들고 싶다면 직접 커스텀 하시기를 추천합니다.
당신의 그날 봤던 광고 하나를 떠올립니다.
처음에는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던 광고였습니다.
가사도우미 안드로이드 및 서포트 안드로이드,
운송용 안드로이드 등등
많은 안드로이드가 인간의 뒷바라지를 하는 것이 익숙한 시대였기에
이제 이런 안드로이드가 나왔구나,
아니 하다못해 이런 안드로까지 나왔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의 신재현을 만나게 된 것은 도시 내의 전자상가에 접어들 때였습니다.
TV에서 봤던 광고와 같은 리플릿이 걸려있는
한 안드로이드 상점 앞에서 발걸음이 멈췄고,
유리 너머로 눈을 감을 채로 진열되어 있던 신재현을 응망합니다.
단순한 이끌림이었는지,
신재현과 같은 존재가 필요했던건지,
그저 하나의 '필연'이었는지.
목적이 무엇인지 상관 없습니다.
그렇게 당신과 신재현이 만났습니다.
당신은 집으로 배송된 거대한 상자를 분해해 목 뒤편에 있는 하나의 버튼을 눌렀고,
그렇게 신재현은 처음으로 세상을 눈에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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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옛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당신의 잡념을 깨는 문장의 토막이 발치로 떨어집니다.
신재현:여행을 하고 싶은데, 같이 가지 않을래요?
당신에게 머그잔 하나를 내밀며 그렇게 말합니다.
얼마 남지 않은 종말.
밖엔 종말에 대한 두려움에 비명을 지르는 사람 하나 없고
일상이라는 듯 똑같은 하루를 반복하는 쉘터.
인류를 대신하여 좌절하는 쏟아지는 인공의 빗방울.
신재현의 갑작스러운 제안.
그럴 바라보면 마찬가지로 덤덤한 표정입니다.
평소처럼.
휴가 계획을 짜듯이.
신재현이 이어서 말합니다.
신재현:문득, 예전에서 본 쉘터 밖의 사진이 떠올랐어요.
멸망 전 녹음으로 들어차 있었던 그런 사진들...
저희가 함께 역사관에서 봤던 그것들 말이에요.
박문대:...그래서, 그걸 직접 보러 가겠다고?
신재현: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문대 씨 생각은 다른가요?
박문대:안전할지는 모르겠는데... 나쁘지 않네. 종말 직전 지상 여행.
계획은 짜 놨냐?
신재현:글쎄요, 외부에 관한 자세한 정보가 존재하지 않아서. 조금은 계획 없이 움직일 것 같은데. 그래도 같이 가줄래요?
박문대:(잠시 고민하는 듯 허공을 응시하다가 머그잔을 받아든다.) 그러든가. 나갈 준비 해야겠네.
당신의 수락이 떨어지자 신재현은 은근히 들뜬 듯한 분위기를 띄웁니다.
필요한 짐이 있으면 챙겨야 겠어요.
모든 준비를 마치면 집 밖으로 나옵니다.
쏟아지는 비는 거셌고,
사람들은 길가에 몇 보이지 않습니다.
고요한 적막 속에서 홀로 울부짖는 빗소리만이 허공을 가릅니다.
간간이 길목에 교통을 정리하는 안드로이드가 폭우 속에서 우산 없이 서 있는 것이 보입니다.
건물 곳곳에서는 환한 빛이 뿜어져 나왔지만,
여전히 종말에 대한 두려움과 좌절의 비명은 들리지 않습니다.
당신과 함께 우상 아래서 비를 피하던 신재현은 나지막이 묻습니다.
신재현:밖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박문대:글쎄... 인공이 아닌 비?
신재현:음, 그런건 당연히 있겠죠. 그런 확실한 것들 말고, 불확실한 상황을 말하는 거에요.
박문대:나야 모르지. 적어도 네가 떠올렸다던 사진 속 풍경을 보러 가는 길이 그리 순탄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점은 알겠지만.
신재현:많이 힘드려나요. 그래도 같이 보려고 나가는 거잖아요? 조금은 희망찬 이야기를 해도 좋을텐데.
박문대:네가 보고 싶다고 해서 나온 거잖아. 뭐... 둘이니까 하나보다야 낫겠지. 죽지만 않으면 된다.
신재현:하하. 제가 원하는 건 다 해줄 것도 아니면서... 그래도 듣기엔 좋네요. 쉘터에 있다면 같이 끝을 맞이하게 될텐데... 음, 문대 씨는 쉘터 안에서 바라던 미래가 있었나요?
박문대:당장 살기 급급한데 미래를 바랄 틈이 있나. 눈앞도 잘 안 보이는데... 그냥 돈 벌고 잘 살다가 때 되면 죽는 거지. 부족하지 않게. 남들처럼.
신재현:그래도 많이 부족하게 살았던 건 아니잖아요. 나를 데려온 것도 그렇고, 같이 있던 동안 무언가 부족하다 느낀적은 적지 않았나요.
박문대:너도 큰 맘 먹고 데려왔다. ...부족했던 적은 없긴 하지. 어쨌든 도시에 살고 있으니까. 그래도 뭔가 이게 평범한 삶이라기에는 좀... 공허하지 않나. (잠깐의 정적 후 피식 웃는다.) 외곽 쪽 사람들이 들으면 기만이라고 하긴 하겠네.
신재현:평범한 삶이라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른 법이니까요. 문대 씨가 평범하지 않다 말해도, 누군가는 지극히 평범하다 느낄수도 있죠. 지금처럼, 멸망이 다가옴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사람들같이.
신재현은 필요한 것이 있으면 사가자며 상점가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비가 오는 상점가는 빗물에 젖어 번들거렸고,
우그러진 네온사인의 불빛뿐입니다.
불이 꺼진 상점도 늘어진 거리는 답지 않게 우울해 보이기도 합니다.
아스팔트와 보도블록에 고인 색색의 빛을 피해 발걸음을 옮기던 신재현은
'추억을 남기자'라며, 전자 상가쪽을 바라봅니다.
박문대:추억? 뭐... 글자라도 새기자고?
신재현:글자는, 왜곡될 수도 있잖아요.
박문대:그럼 뭐. (상가 쪽으로 걸어간다.) 사진?
신재현:네. 사진이 가장 좋겠죠.
신재현과 당신은 온갖 전자 기기들을 판매하는 상점가가 모여있는 거리로 접어듭니다.
세탁기부터 컴퓨터,
개인용 휴대전화 등의 가전제품과 그들의 부속품,
그리고 안드로이드를 파는 가계들이 경쟁하듯 틈 하나 없이 붙어 길게 두 줄로 늘어져 있습니다.
그 사이를 헤집어보니 한 가전제품이 보입니다.
고개를 들어 간판을 바라보면 유명한 회사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빗물이 우산 표면을 타고 빠르게 여러 번 추락합니다.
그것들을 응시하다가 가게 내부로 고개를 돌리면
안으로 들어간 신재현이 벌써 카메라 진열대 앞에 서 있는 것이 보입니다.
다가가면 진지한 얼굴로 카메라를 보며 고민에 빠진 모습이 시야 끝에 걸립니다.
한참을 바라보더니 한 카메라를 집어 들곤 당신을 향해 돌아봅니다.
결정한 듯 근처의 직원을 부른 신재현은 자신의 볼일은 끝났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여행의 시작인 걸까요.
그것을 반기듯 쏟아지는 빗물의 양은 서서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가전제품점을 빠져나와 조금 걸으면,
일전에 신재현을 구매했던 안드로이드 가게가 눈에 들어옵니다.
잊을 수 없던 그 날.
바로 엊그제인 것처럼 생생하기만 합니다.
한쪽 유리 벽에는 n년 전에 봤던 전자형 리플렛이 여전히 걸려 있습니다.
박문대:
관찰력
기준치:65/32/13
굴림:57
판정결과:보통 성공
자동으로 경쾌한 나레이션이 들릴 정도로 익숙한 문구 옆에는 이젠 기억도 나지 않는 주의 사항들이 적혀있습니다.

  1. 친구와 연인 중, 하나를 고르면 다른 알고리즘은 삭제되어 복구가 불가능하오니, 신중한 선택이 필요합니다.
  2. 랜덤 버튼을 누를 시, 저장된 무수히 많은 변수가 섞여 커스텀 됩니다. 원하는 안드로이드가 있다면 직접 커스텀 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3. 재 커스텀을 할 경우, 이전에 함께 보냈던 기억을 담은 메모리칩 또한 리셋되오니 이 역시 신중한 선택이 필요합니다.
  4. 본 안드로이드만의 절충형 배터리가 있습니다. 일반 휘발유 등의 연료도 사용할 수 있지만, 이는 안드로이드 내부 부품에 큰 악영향을 끼쳐 오래 가지 못한다는 점 유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로 인한 a/s는 불가능합니다.
  5. 배터리 소진까지 얼마 남지 않았을 경우, 삑삑-거리는 알림음이 들리오니 반드시 충전해주시기 바랍니다. 잠시 가동 중지가 되는 것으로 문제가 되지 않지만, 장기간 중지될 시 기억이 리셋될 수 있으니 주의해주십시오.
그런 것들을 시선으로 더듬어 내려가다 보니
누군가의 손이 불쑥 찾아들어 시야의 일부를 가립니다.
불청객의 존재를 찾으며 고개를 돌리자
옆에 선 채 당신을 보고 있는 신재현이 보이네요.
뭘 그렇게 보냐는 말을 하며 우산 아래 오도카니 서 있을 뿐입니다.
두 사람은 다시 빗속을 걷습니다.
우산의 팽팽한 표면을 두들기는 빗줄기와
서늘하지만 습한 바람.
어둠이 켜켜이 내려앉은 거리 사이로 우왁스럽게 파고드는 네온사인의 불빛.
전자 상가를 거의 다 빠져나올 때 즈음입니다.
문득 어두운 골목이 시선을 잡아끕니다.
박문대:
관찰력
기준치:65/32/13
굴림:30
판정결과:어려운 성공
형형색색의 길거리를 말미암아 구석으로 뻗어 나간 좁고 어두운 골목입니다.
건물의 작은 형광등 한 줄기에 연명하며 숨을 쉬는 뒷골목에는 무수히 많은 안드로이드가 있습니다.
망가진 혹은 전원이 방전된 무수히 많은 안드로이들이 마치 죽은 것처럼 눈을 감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둠 속이 무덤이라는 양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는 것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차라리 눈을 돌려버리고 싶을 정도로요.
당신이 골목을 바라보자 신재현 또한 당신의 옆에서 골목을 바라봅니다.
한참을 바라보던 신재현이 가장 먼저 한 행동은
그것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것이었습니다.
박문대:이것도 추억이라고 담는 거냐?
신재현:추억 보다는 기록이죠. 멸망 전, 이들이 있었노라고 기록해 줄 것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
음... 불쌍함, 연민. 그런 생각? 저도 잘 모르겠지만, 그런 감정이 들어요. 아마 계산된 반응이겠죠?
그래도, 전 문대 씨를 만나서 다행이라 생각해요.
박문대:왜. 너도 수명 다 되면 저 사이에 있을지도 모르지. ...하긴, 안드로이드가 여행 가겠다고 같이 따라가는 사람도 드물 것 같긴 하다만.
신재현:내가 수명이 다하면 저렇게 버려둘 건가요?
박문대:몰라 임마. 생각해본 적 없어.
둘은 빗물로 축축한 보도블록을 밟으며 도시 밖으로,
또 밖으로 나갑니다.
어둠을 어깨에 인체로, 나란히.
신재현:생각해 본 적 없다라... 문대 씨에게 나는 이미 당연한 존재가 된 건가요.
박문대:...그런가? 네 수명이 짧지는 않을테니 먼 미래라 여기고 고려하지 않은 것이긴 하지만... 네 말도 틀린 것 없는 것 같네.
신재현:만약에 내가 이들처럼 존재하는 수명이 다하게 되더라도, 문대 씨는 날 잊지 않겠죠.
박문대:잊겠냐. 지낸 시간이 있는데, 당연히 안 잊겠지.
신재현:그래요. 그럼, 그걸로 충분해요. 애초에 우리들의 삶은, 오로지 당신이 전부이기에. 기억에 남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완벽한 삶이었다 할 수 있겠죠.
박문대:그러냐. ...너 이럴 때마다 진짜 인간 같아서 소름돋는 거 알아? 굉장히 철학적인 성격이었네.
신재현:... 글쎄요. 우리들에겐 이게 당연한 거에요. 생산될 때부터, 당신을 위해 생산 된 개체잖아요. 만약, 당신이 나를 잊는다면 그것 또한 받아들여야겠죠. 하지만, 왜일까. 기억에 남아 있기를 바라게 되어서.
박문대:(...그러니까, 그런 점이 인간 같다는 거라고.) 잘됐네. 난 결국 기억하게 될 테니까. 카메라 산 것도 같은 결인가? 잊혀지지 않기 위해서?
신재현:잊혀지지 않기 위해서라. 그러한 의미가 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건 문대 씨의 기억에 남아있기 위한 강압적인 수단은 아니에요. 어쩌면 존재할, 문대 씨를 넘은 먼 미래의 사람들에게도 이러한 세계가 존재했다는 하나의 기록인 셈이죠.
도시의 외곽으로 나오면서 단 한 사람도 말을 걸지 않았습니다.
모두 자신만의 바쁘면서도 게으른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겠죠.
타인에 대한 신경은 더는 불필요한 것이고,
필요 이상의 교류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 덕에 밖으로 나가는 두 사람을 멈춰 세울 사람은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처음 마주한 도시 밖의 풍경은 무척이나 낯섭니다.
낡아 보이는 건물들은 일부의 콘트리트가 벗겨져 철근이 드러나 있기도 했고,
몇몇 곳은 버려진 것을 이어붙여 쌓고,
두르고,
올려서
엉성한 건물을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무수히 많은 홀로그램과 네온사인의 빛과
쉘터의 천장을 뚫듯이 높고 또 높게 쌓아올린 빌딩들이 뺵빽하게 모여있던 도시와는 사뭇 다른 풍경입니다.
한 쉘터 안에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심할 정도로 어울리지 않는 풍경입니다.
그러나 이방인 또는 불청객을 보는 시선이 등 뒤를 쫓는 것을 보아하니
사람은 사는 것이 분명합니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먹구름 때문이 아닌 밤의 어둠으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온갖 빛에 가려졌던 곳을 벗어나니
비록 인공이라고 하더라도 무수히 많은 별이 쏟아질 듯 존재감을 과시하며 하늘에 매달려 있는 것이 보입니다.
신재현:문대 씨, 잠시 쉬다 갈 곳이 필요하겠어요.
그런 신재현의 말을 들으며 당신은 쉴만한 곳이 있을지 주변을 훑어봅니다.
박문대:
관찰력
기준치:65/32/13
굴림:72
판정결과:실패
과연 하루나마 묵을 수 있는 숙소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변두리를 살펴보지만,
역시......
기대한 것은 잘못이었을까요?
묵을 수 있을 만한 곳은 보이지 않습니다.
박문대:
기준치:70/35/14
굴림:51
판정결과:보통 성공
적당히 이동하는 도중,
허름하고 무너질 듯 보이는 간판을 내건 숙박시설 하나가 시야에 걸려듭니다.
......이토록 허름한 공간에 묶는 건은 처음이지만,
길바닥에서 자는 것보다는 낫겠지요.
안으로 들어가면 그야말로 허름한 로비가 보입니다.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고개를 흔들며 졸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평소에 손님이 잘 오지 않는 걸까요?
주인을 부르는 언행을 취하면 급하게 잠에서 깨어난 주인이 당신과 신재현을 보고 미간을 옅게 찡그립니다.
박문대:
심리학
기준치:40/20/8
굴림:16
판정결과:어려운 성공
숙박시설의 주인은 이방인으로 보이는 둘을 경계하는 태도를 보입니다.
신재현:(아무 말 없이 당신 옆에 멍하니 서 있습니다.)
박문대:여기서 하룻밤 지내려 하는데요. 얼마면 될까요?
주인: 얼마 안 해. 내어줘?
박문대:네. 두 명이 잘 수 있는 방으로 부탁드립니다.
그 말에 별 다른 말 없이 열쇠를 내어줍니다.
방 호수를 확인한 수 계단을 밟고 올라 묵을 방으로 향합니다.
계단을 향해 몸을 돌리지 어디선가 말소리가 들립니다.
박문대:
듣기
기준치:70/35/14
굴림:44
판정결과:보통 성공
오늘 밤 야시장이 열린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계단을 오르고 오를수록 발아래에서는 나무의 삐걱대는 비명이 자꾸만 뒤따라오네요.
계단을 오르고 로비를 지나 도착한 숙박시설의 내부는 좋다고 할 수도,
그렇다고 나쁘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저 하루 정도 잠을 자기엔 충분한 공간입니다.
단출한 방은 낡은 티가 납니다.
구석구석 누렇게 변질된 벽지와 여전히 삐걱거리는 마룻바닥.
상태가 좋아 보이진 않는 하얀 매트리스,
덩그러니 놓인 옷걸이,
다른 벽면에 붙어있는 작은 욕실까지.
숙박비가 비싸지 않았으니 이 정도로 만족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신재현:이런 방에서 자는 건, 처음 아닌가요.
박문대:처음이지. 그래도 못 잘 정도는 아니고.
신재현:음, 그럼 바로 잘건가요?
박문대:되면 계획이나 좀 세우자. 아직 어디로 가서 뭘 볼 건지도 안 정했잖아.
신재현:가보고 싶은 곳 있나요?
박문대:애초에 나는 바깥 구경 한 번쯤은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나온 거라 딱히 목적은 없다만. 그래도 사진에 관심은 있으니까... 음. 풍경이 예쁜 곳이면 좋긴 하겠네.
신재현:문대 씨가 마음에 드는 풍경이 나타나면 좋겠네요. 음... 괜찮으면 밤에 야시장에 가지 않을래요?
박문대:아. 그거 오늘 밤이지. 그럼 자기 전에 가 보자.
신재현:좋아요. 같이 가봐요.
숙박시설 주인이 알려 준 길을 따라 낯선 거리를 걷습니다.
건물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문득 활기찬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얼마 걸리지 않는다고 하던 주인의 말이 사실이었던 것 같네요.
이질적인 정도로 삭막한 곳에서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계속해서 걸음을 옮기면 비로소 나타나는 야시장입니다.
낡고 지저분한 천막을 치 간이 가판대가 길 양쪽에 옹기종기 모여있었고,
사람들은 그사이를 지나다니며 숨기지 못하는 웃음을 내걸고 있습니다.
여기 만큼은 낯선 이방을 불쾌하게 바라보는 시선조차 존재하지 않습니다.

장터로 갈까. 가서 밥도 좀 챙기고.
다가가기만 해도 군침이 돌게 만드는 음식 냄새가 나는 먹거리 장터입니다.
이곳저곳에서 먹고 가라는 외침이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어디로 가는 것이 좋을지 두리번 거리게 되네요.
박문대:
관찰력
기준치:65/32/13
굴림:80
판정결과:실패
아, 저기 볶음밥 집에서 나는 냄새가 참 좋네요!
널찍한 컵에 담아 숟가락과 함께 담아주는 걸 보니 돌아다니면서 먹을 수도 있겠어요!
신재현:그러고보니, 나와서 아무것도 안 먹었네요.
박문대:저녁을... 안 먹었지, 참. 저기서 사 가자. (볶음밥 집을 가리키며)
신재현:그래요.
볶음밥을 하나씩 사서 들고 다니면,
배고파서 그런지, 맛있어서 그런지,
금방 그릇은 바닥을 보입니다.
박문대:
관찰력
기준치:65/32/13
굴림:41
판정결과:보통 성공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홀로 조용하고 음침한 가게 하나가 툭 튀어나와 있습니다.
그 모습이 은근하게 시선을 끄네요.
박문대:(가게에 간판이 있는지 찾아본다.)
따로 간판은 보이지 않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야 어떤 곳인지 확인할 수 있는 듯 하네요.
박문대:야. (신재현의 옷을 살짝 잡는다.) 저기 좀 궁금한데, 가 볼까.
신재현:음? (당신이 보는 장소를 저도 눈에 담더니.) 그래요.
그 이끌림에 따라 안으로 들어가 보면
은은한 라벤더 빛 조명이 가득한 가게 내부가 제일 먼저 보이고
갖가지 화려한 장신구와 알 수 없는 색색의 병,
그리고 오래되어 보이는 서적이 꽂힌 책장 등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가게 내부에 들어서고는 얼마 되지 않아
한 늙은이가 모습을 드러내더니
천천히 구경하다 가라고 합니다
구경할 수 있는 구역은 가판대, 진열장, 책장입니다.
박문대:(가판대 쪽으로 다가가 구경한다.)
화려한 장신구가 놓인 가판대입니다.
전체적으로 자주색의 벨벳이 깔려 있어 신비로운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놓인 장신구는 전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긴 부담스러운 정도로 화려합니다.
박문대:(어떤 장신구가 있는지 좀 더 살펴본다.)
딱히 눈에 띄는 장신구는 없습니다.
아니, 역으로 전부 눈에 띄어서 특별한 것이 없다고 해야할까요.
아무튼 특별한 건 없는 것 같습니다.
박문대:(파는 건 아닌 것 같고... 하긴, 판다고 해도 너무 화려해서 살 생각은 안 든다. 진열장을 구경한다.)
유리문 없이 오픈된 진열장입니다.
그 위에는 색색의 액체가 담긴 유리병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습니다.
유리병에 달린 라벨을 들춰보면 각각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천재의 묘약, 사랑의 묘약, 식탐의 묘약……
그리고 잠의 묘약이라는 라벨이 달린 유리병을 볼 때 즈음,
늙은이가 당신에게 그것을 건넵니다.
"이 늙은이의 가게 온 게 반가워 주는 선물이란다. 내, 오랫동안 사람을 본 적이 없어 무척 반가워 그러는 것이니 부담스럽게 여기지 않아도 좋단다."
그리 말한 늙은이는 더 구경하고 싶으면 구경하라는 듯 턱짓을 합니다.
박문대:(노인에게 작게 감사 인사를 하고, 책장을 살펴본다.)
아주 오래된 서적들이 꽂혀 있습니다.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책등에 적힌 제목조차 손끝에 닳아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얇은 책부터, 무척 두꺼운 책까지.
가지각색의 서적들이 보기 좋게 나열되어 있습니다.
박문대:(책을 아무거나 하나 집어서 펼쳐본다.)
책을 빼내어 살펴보면,
도무지 알아볼 수 없는 글자에 머리가 어지럽습니다.
박문대:
SAN Roll
기준치:60/30/12
굴림:67
판정결과:실패
이성 1 차감
박문대:(반사적으로 머리를 짚으며 책을 원래 자리에 넣는다. ...뭐였지, 방금.) 나가자. 신기한 거 많네.
가게를 나서기 전에 늙은이는 또 오라는 말을 건네곤 다시 가게 안쪽으로 들어갑니다.
가게에서 나온 후 뒤를 돌아보면 그 가게는 홀연이 사라져 있습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죠?
박문대:
SAN Roll
기준치:59/29/11
굴림:54
판정결과:보통 성공
믿을 수 없는 광경이지만,
손에 들린 잠의 묘약은 꿈이 아니라고 말해줍니다.
정신을 차리면 다시 맛있는 냄새가 후각을 자극합니다.
방금 음식을 사먹긴 했으나, 원한다면 더 둘러봐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박문대:(간식으로 사먹을만한 건 없는지 간판이 나열된 거리를 둘러본다.)
웬만한 음식은 전부 판매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박문대:(시설 좋네. ...음. 아까 봤던 유령극단이 끌리는데.) 좀 전에 연극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지금 보러 가자.
신재현:극단이요? 그래요.
야시장이 선 길목을 조금 걷다 보면
낡은 한 건물이 보입니다.
그 뒤에선 또한 왁자지껄,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여기서도 무언갈 하는 것으로 보이는군요.
건물 뒤 주차장으로 보이는 곳은
어느덧 한 극단을 위한 작은 무대로 변해있습니다.
아직 시작하지 않았는지 바닥에 앉은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웃고 떠들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마침 저기에 자리가 나 있습니다.
연극을 보려면 지금이 딱 맞을 것 같네요.
신재현:앉을까요?
박문대:그래. (빈 자리에 가서 앉는다.)
자리에 착석하면 얼마 되지 않아 배경음이 깔리고 배우들이 한 명씩 나오기 시작합니다.
간단한 인사를 한 그들은 몇몇은 무대 뒤로 들어가고,
남은 이들은 자연스럽게 연기를 하기 시작하네요.
내용을 보아하니 죽어가는 사람과 함께 곳곳을 여행하며 여생을 보내는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연인의 아픔을 담고,
중간중간 재미있는 연출이
분위기를 마냥 무겁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곧이어 한 사람이 쓰러지고,
남은 사람은 눈물을 흘리며 무너지는 몸을 추락하기 전에 받아듭니다.
그리고 내려가는 커튼.
사람들의 아우성이 쏟아지고
곧 밝은 표정의 배우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연극의 끝입니다.
그들은 모두 인사를 마친 후에 이러한 질문은 내놓습니다.
"죽음을 받아들인 이에게 가장 나은 것은 죽음일까요, 삶일까요?'
박문대:(...그래도, 살아야 마땅하지 않나. 죽음을 받아들인 것이지, 삶을 포기한 것은 아니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옆 사람의 팔을 잡아 이끌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신재현:(따라 자리에 일어납니다.) 음, 다음에는 어디로 갈 건가요?
박문대:...음. 버스킹이나 보러 가자.
신재현:그래요.
아,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문대 씨는, 마지막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박문대:살아야지. 살 수만 있다면. 죽음을 받아들였다는 게 죽고 싶다는 의미는 아니잖아. 죽는 것보다야 어떻게는 연명해 보는 게 낫지 않겠냐.
신재현:그런가요. 살아갈 방법이 없는 사람에게, 짧게 쥐어준 삶은 오히려 고통스러운 거 아닐까요.
사라져 가는 모습을 보는 사람도 동시에 괴로워지잖아요.
박문대:삶이 얼마 남지 않은 게 확정됐다면 남은 시간 동안 좋은 추억을 만드는 데엔 동의해. 더 살 방법을 찾는 데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하지만 살 방법이 이미 제시되어 있다면 시도해보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주변 사람들도, 이별이 최대한 늦어지길 바라지 않을까.
신재현:이별해야하는 시간이 길어진다고, 이별이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요. 살 방법이, 영구적인 삶이 아닌 짧은 시간 만큼을 늘리는 거여도. 문대 씨는 기꺼이 삶을 쥐어줄껀가요?
문대 씨의 마음을 다 이해할 수 있을 리 없지만. 만약 당신이 나로 인해 슬퍼한다면. 그건 조금은 싫을 것 같아서.
박문대:...너 무슨, 곧 죽냐?
신재현:음? 왜 그렇게 생각해요. 제 옆에 있는 건 문대 씨 뿐이니까. 가정을 한다면, 저와 문대 씨 외의 사람을 넣을 수 없는 것 뿐이에요.
박문대:뭐, 만약 네가 곧 죽는데 그걸 늦출 방법이 있다면. 그리고 네가 그걸 받아들인 상태라면... 그래도 네가 더 남아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넌 죽어가는 과정에서 딱히 고통스러워하지도 않을 거 아닌가.
신재현:그렇죠. 저희는 죽음이 곧 고통으로 만들어진 존재도 아니고, 애초에 죽음이라는 것을 슬픔으로 받아들일 이유는 없으니까요. 누군가의 인생에, 저희들의 존재는 영구적일 수 없으니까요. 원한다면 교체되어야 하고. 바라지 않는다면 폐기되어야 하죠.
슬슬, 다른 곳도 가볼까요?
박문대:버스킹 보러 간다고 했잖아. 가자.
...난, 네가 죽는다면 조금 슬플 것 같다.
신재현:슬퍼하지 말아요. 아마 나의 모든 기동이 멈춰도, 당신의 슬픔만큼을 알지도 모르니.
버스킹을 하는 장소로 걸어가면,
처음 듣는 노래를 부르는 이를 중심으로 하여,
넓게 원으로 서 있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곳을 보던 신재현은 당신을 이끌고 천천히 다가갑니다.
신재현:이렇게 거리에서 하는 공연을 버스킹이라 부른대요. 신기하죠. 도시에는 이런 공연이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사람들 틈에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간 신재현은 그리 이야기 합니다.
어쩐지 다들 행복한 표정을 한 채로 노래를 듣는 사람들에게서 행복이 옮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신재현:저 사람들은 자유로워 보이네요.
그 말을 한 신재현은 곧 카메라를 든 손을 들더니
당신을 찍습니다.
신재현:그리고 행복해 보여요. 지금의 당신도.
박문대:...줘 봐. (당신이 든 카메라를 뺏어든다. 버스킹을 듣는 사람들을 배경으로 신재현의 모습을 찍는다. 찍은 사진을 확인한다.) ...음. 나쁘지 않네.
뭐. 널 기록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서 찍어 봤다.
신재현:나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나요? (저를 찍는 렌즈를 보다, 그 물체를 든 당신을 바라본다. 깜박이는 눈이, 순간 어떠한 감정이라도 담은 듯 이채로운 빛을 낸다.)
버스킹도 슬슬 끝나가는 것 같은데, 다른 곳도 가볼까요.
박문대:그래. 남은 곳이... 음. 게임 센터나 가자.
간판에는 게임센터라고 적혀있긴 하지만 그렇게 부르기엔 조금 엉성한 가게입니다.
가판대 뒤, 좁은 공간 안에는
몇몇 사람들이 두 가지 게임을 즐기고 있습니다.
금붕어 잡기와 사격 게임인 듯 보입니다.
한쪽에는 대야 주변에 쭈그려 앉아
작은 뜰채로 금붕어를 잡으려 애썼고,
다른 쪽에는 불규칙적으로 사격 소리가 납니다.
어느 것을 먼저 즐길까요?
박문대:(사격 게임을 하는 곳으로 걸어간다.)
어딘가가 기운 진열대 위에 놓인 인형을 쏴 떨어트리면
그 인형을 가지고 갈 수 있는 단순한 게임입니다.
참여하는 데에 조금의 참가비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신재현과 당신은 그만한 돈을 가지고 왔을까요?
박문대:
재력
기준치:55/27/11
굴림:42
판정결과:보통 성공
주머니를 살펴보자 충분한 돈이 나옵니다.
그럼 사격 게임을 한 번 해볼까요?
박문대:
사격(권총)
기준치:20/10/4
굴림:1
판정결과:대성공
탕!
사격이 인형을 명중합니다!
정말 아름다움 솜씨입니다.
실패하면 대신 해주려는 듯 다른 총을 만지작거리던 신재현은
그대로 총을 원래 자리에 내려놓습니다.
신재현:대단하네요.
박문대:...나도 내가 사격에 재능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신재현:인형 챙겨가요.
박문대:아.
당신이 쏜 인형은 노란 강아지 인형입니다.
뭔가를 연상시키는 것 같지만...
일단 돈 주고 뽑은 물건이니 잘 들고 가도록 합시다.
신재현:금붕어 잡기도 할 건가요.
박문대:해보지 뭐.
작지도 크지도 않은 낮은 수조에
어른이며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습니다.
안에는 주홍색과 검은색의 금붕어들이 유유자적 헤엄치고 있고,
사람들은 작은 용기 하나와 거름망을 쥔 채로 헤엄치는 금붕어를 노리고 있습니다.
이것도 참여하는 데에 조금의 참가비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박문대:
재력
기준치:55/27/11
굴림:76
판정결과:실패
방금 사격게임으로 가져온 돈을 다 쓴 것 같네요.
박문대:...너 가져온 거 있냐?
신재현:돈이요? 음, 찾아볼게요.
신재현:
재력
기준치:60/30/12
굴림:10
판정결과:극단적 성공
아, 있네요.
다행이 신재현이 따로 챙긴 돈이 있었습니다.
그럼 금붕어를 잡아 볼까요?
박문대:
손놀림
기준치:40/20/8
굴림:9
판정결과:어려운 성공
신재현:
손놀림
기준치:70/35/14
굴림:67
판정결과:보통 성공
능숙한 손길로 금붕어를 잡는 당신과 다르게,
신재현은 묘하게 어색한 느낌입니다.
돈은 자기가 냈으면서...
신재현:잘 하네요.
박문대:재밌네, 이거... (기계적으로 금붕어를 잡는다.)
신재현:문대 씨가 이런 걸 잘 하는 줄은 몰랐네요.
박문대:손재주 없다는 소리는 못 들어봐서.
너도 못 하지는 않네.
신재현:문대 씨에 비해선 아닌 것 같지만요.
박문대:이건 상품 따로 없나?
신재현:잡은 만큼 금붕어를 가져가는 것 같은데요.
박문대:둘 데가... 있나? (여행 중이던 자신들의 사정을 자각하고, 거름망과 금붕어들을 반납하러 간다.) 그냥 두고 가자. 금붕어 구워먹을 것도 아니고.
신재현:하하, 그렇죠. 아쉽지만 두고 가요.
거름망과 금붕어를 둘려주고 밖으로 나오면
어린아이 몇 명이 사람들 사이를 헤쳐 지나가며 달려갑니다.
자기들끼리 소리치길,
곧 불꽃놀이를 한다네요.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사람들을 따라 걸으면
널따라 공터가 보입니다.
그곳으로 향하면 여러 사람이 길고, 검은 막대 두어개를 사람들의 손에 쥐여주고 있습니다.
신재현은 그것을 스파클라라고 말합니다.
공터 한 쪽에서는 발사시킬 수 있는 불꽃놀이 장난감 또한 3개씩 묶어 파는 것 같습니다.
신재현은 나눠주는 것을 받으며 말합니다.
신재현:원래 불꽃놀이는 넓은 하늘에 폭죽을 쏴, 거대하게 피어나는 색색의 불꽃을 구경하는 것을 지칭한다 해요.
하지만, 이곳은 쉘터 안이라 그것까지는 할 수 없는 것 같네요.
만약, 이곳에서 나가게 된다면. 그 땐 진짜 불꽃놀이를 보지 않을래요?
박문대:...예쁘겠네, 그거.
보러 가자. 한다면.
신재현:그래요, 약속한거에요.
막대 끝에 불을 붙이면
노란빛의 불꽃이 화려하게 튀기 시작합니다.
어두운 인공 하늘 아래,
많은 사람이 노란 불꽃을 들고 있으니
은하수 한복판에 떨어진 것 같기도 합니다.
뛰어노는 아이들의 궤적을 따라 불빛이 흔들리고,
별을 쥐어 매단 것처럼 빛의 궤적이 쉴 새 없이 나아가고,
허물어지고,
비틀리고 직행하다
무너집니다.
그리고 아까와 같이 신재현이 카메라를 듭니다.
이어 작은 소음과 함께 당신의 모습을 담아내네요.
박문대:
기준치:70/35/14
굴림:27
판정결과:어려운 성공
누군가 다가와 신재현을 향해 부탁 하나를 합니다.
행인: 안녕하세요! 죄송한데, 저희 사진 좀 찍어줄 수 있나요?
박문대:찍을 거냐? 난 상관없는데. 그거 네 거잖아.
신재현:제가 문대 씨 꺼인데, 문대 씨 마음대로 해도 괜찮아요.
박문대:어. 너 내 거지. 찍어드려.
신재현:(당신의 허락이 있자, 카메라를 들고 행인을 찍어줍니다. 렌즈를 잡고, 셔터를 누르는 손길이 이제는 익숙하게 보입니다.)
행인: 감사합니다! 보아하니 커플이신 것 같은데, 두 분도 같이 찍어드릴게요!
호의적인 웃음을 띤 갈색 머리의 사람이 카메라를 건네받고,
어서 붙어보라는 웃는 낯으로 손을 휘적거립니다.
박문대:(어색하게 네 옆에 붙어서 렌즈를 바라본다. 나름 팔짱도 껴 본다. 네 표정을 살피다가, 문득 이런 상황이 왠지 웃겨 웃음을 날숨과 섞어 뱉는다. 외곽 지역에서 이 놈이랑 사진도 찍고, 별일이군. 이내 편안해진 표정으로 피사체가 될 준비를 마친다.)
신재현:(제 옆에 붙은 당신에게 가볍게 기대고선 자연스럽게 웃으며 카메라 렌즈를 바라본다.)
치즈! 하는 소리와
얼마 가지 않아 찰칵, 하는 짧은 단말마가 고막을 두드립니다.
행인: 두 분 정말 잘 나왔어요!
그렇게 카메라를 건네는 그들의 얼굴에는 모든 행복을 끌어안은 듯 밝습니다.
박문대:감사합니다. (웃으며 카메라를 받아들고 사진을 확인한다.) ...아. (내가, 이 놈이 이런 표정을 지었던가. 옆에 선 신재현의 표정을 흘긋 보고 그대로 그에게 카메라를 넘긴다.)
이런 축제가 도대체 얼마 만일까요.
그 삭막하고 대부분이 디지털화된 곳에서 벗어나니 어쩐지 숨이 트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사람들의 행복한 웃음소리를 들은 것이,
그 활발한 거리를 본 것이,
그리고 사람이 사람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습니다.
도무지 식을 생각을 하지 않는 소음 사이를 빠져나와 숙소를 향하면
서서히 침묵이 찾아옵니다.
오로지 당신과 신재현의 발걸음 소리뿐이에요.
카운터에 앉아 꾸벅꾸벅 조는 주인을 지나
숙소로 향하면 신재현은 자연스럽게 잘 자라는 인사를 건넵니다.
박문대:...어. 너도. (방의 불을 끈다.)
오늘 온종일 돌아다녀서 그럴까요?
베개에 머리를 뉘이자 피곤함이 물 밀리듯 몰려옵니다.
그리고 잠에 들기 전에...
박문대:
듣기
기준치:70/35/14
굴림:71
판정결과:실패
불을 꺼 깜깜한 공간 속에서 무언가를 들은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너무 피곤한 탓인지 정말로 들었는지조차 의심이 갈 정도입니다.
다시 들어볼까요.
박문대:
듣기
기준치:70/35/14
굴림:62
판정결과:보통 성공
순간, 날카로운 기계음이 들립니다.
피곤함 사이로 불현듯 파고드는 것은 칼날과도 같아,
방금 전까지 왜 인지하지 못했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선명한 소리 입니다.
그 소리에 어쩐지 심장께가 서늘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박문대:
지능
기준치:70/35/14
굴림:65
판정결과:보통 성공
어쩐지 알 것만 같은 소리입니다.
어째서 전자 상가에 걸려 있던 리플렛이 생각나는 걸까요.
......
설마요.
어쩐지 가슴께에 싸한 감정이 들어차기 시작합니다.
이름 아침 햇살이 눈두덩이를 간질입니다.
커튼 사이로 쏟아지는 빛무리에 눈이 아파져 올 때 즈음,
누군가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립니다.
신재현:일어나요, 문대 씨. 아침이에요.
눈을 떠보면 신재현이 당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선이 마주치자 좋은 아침이라고 인사말을 건넵니다.
종말을 하루 앞둔 아침이라 하기엔 믿을 수 없이 평화로운 시간입니다.
신재현이 준비한건지,
숙박 시설의 주인이 챙겨준 건지 모를 아침밥이 탁자 위에 올려져 있습니다.
아침을 해결하고 나와 무사히 체크아웃한 후에 숙소를 떠납니다.
이제 마지막 여행의 날입니다.
숙소에서 멀어져 서서히 도시 외곽으로 계속해서 나아갑니다.
신재현:다음엔 어디를 가게 될까요.
박문대:목적지가 없으니까 모르겠는데. 일단 올라가면 뭐라도 보이지 않을까 싶다.
신재현:문대 씨는, 멸망 이후에 이 세계가 어떻게 변할거라고 생각하나요?
박문대:뭐 때문에 종말이 오는 건지 알 길이 없어서... 글쎄. 인간이 밖에서 살 수 없는 환경이니까 멸망이라고 부르는 거 아니겠냐. 하기야 우리는 쉘터 안에서 살아가니까, 그닥 영향은 없겠네.
신재현:하긴, 저희는 어떤 것을 멸망이라 부르는 지 모르네요.
그렇게 조금 걷자,
저 멀리 있는 주유소에서 말소리가 들립니다.
주유소 가까이 다가갈수록 말소리는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건장한 성인들은 흰색의 커다란 플라스틱 용기를 큰 트럭에 한가득 싣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진해지는 석유 냄새를 보아하니
그 안에 담긴 것은 휘발유인 것 같네요.
박문대:(사람들에게 다가가 말을 건다.) 안녕하세요. 지금 무슨 일을 하고 계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행인: 보다시피 휘발유를 옮기고 있지.
박문대:수고가 많으시네요. ...아. 야. (옆의 신재현을 툭툭 부른다.) 너 배터리 슬슬 다 돼 가지 않나? 어제 소리 들은 것 같은데.
신재현:음? 배터리요? 잘못 들은 것 같은데.
썩, 호의적으로 보이지 않았던 사람들은
둘의 대화를 듣자 기가 차다는 얼굴로
하, 하고 낮게 웃습니다.
행인: 보아하니 한 명은 안드로이드 같은데, 썩 꺼져.
좋지 않은 말을 하며, 신경도 쓰지 않겠다는 듯
하던 일을 계속해서 합니다.
보아하니 이 변두리에서 안드로이드의 취급은
그다지 좋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의문을 가지면,
신재현은 당신을 가던 길로 끌며 이렇게 답합니다.
신재현:세상에는 다양한 안드로이드가 나온 건 알고 있죠.
새로운 안드로이드가, 새로운 목적으로 탄생되며, 인간이 하던 자질구레한 일들을 도맡기 시작했어요.
그리하여 실직된 사람들은 전부 이곳으로 쫓겨났고요.
아주 오래전의 일이기 때문에, 자세히 알려진 바는 없지만. 아주 오래전 부터 낙오된 사람이기 때문에 도시 사람과 안드로이드에 대한 감정이 굉장히 격한 편이에요.
아마, 문대 씨가 별 말을 하지 않았더라도 제가 안드로이드라는 걸 금방 눈치챘을거에요.
상대하지 않는 편이 좋아요, 저 사람들은.
신재현:문대 씨나, 도시 사람들처럼 안드로이드를 사용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과 달리. 저것들은 철저하게 안드로이드를 배제했기 때문에, 아날로그 방식에 익숙하죠. 우리보다 몸을 더 자주 움직이고, 힘을 쓰는 그런 것들이요.
그래서, 만약 다툼이 일어나면... 문대 씨가 많이 다칠 수도 있어요.
박문대:이쪽 주변에서 안드로이드 인식이 좋지 않을 거라는 건 예상했는데, 이렇게 쫓겨날 줄은 몰랐네. (씁쓸한 듯 미간을 조금 찌푸린다.)
몸싸움까지 한다고? (생각치도 못했던 외곽 지역 거주자들의 면모에 약간의 놀라움을 느낀다. 보이는 풍경도, 사람들의 행동도, 도시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르다니. 이것을 전에는 존재조차 몰랐다니. ...이 여행이, 예상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에 새로운 감흥이 든다.) 뭔가... 아예 다른 세상 같네, 여기는.
신재현:그들 입장에서는 자신의 삶을 빼앗았다 생각하겠죠, 미워할 수 밖에 없는 환경 아닐까요.
안드로이드라는 매체가 없는 세계에서는, 사람과의 접촉이 필연시 되니까요. 그만큼 감정적으로 구는 경우도 빈번하다는 거겠죠. 놀라워 할 거 없어요.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니, 타인과 교류하는 방법 또한 다를 뿐이죠. 필연적으로 얼굴을 봐야하고, 그렇다면 내가 저 사람과 얼마나 다른지 알게 되니. 뒤틀린 생각을 품게 되는거죠.
박문대:그게 본래 인간들의 모습이기는 하겠지. 직접적으로 접촉하고, 교류하고. 감정을 표출하고. (나랑은 다른 세계 같다만. 이어서 걸음을 옮긴다.) 안드로이드의 유무가 그렇게 큰 차이인가?
신재현:안드로이드가 결정적 원인이 아닐 수도 있겠죠. 하지만, 안드로이드가 존재하게 되면서. 사람들은 모든 일을 안드로이드와 함께 하게 되었으니까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조차 안드로이드가 하게 되었으니, 그만큼 잃어버린 것도 존재한다는 거겠죠.
그들을 피해 계속해서 바깥으로 걸어가자,
서서히 녹음이 지더니
곧 사람들이 억지로 심은 나무들이 빼곡해지기 시작합니다.
비록 크기가 비슷하고,
곧고 예쁘게 뻗어 나간 나무들이
일정한 간격에 맞춰서 늘어져 있지만,
자연의 아름다움을 가리지 못합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풀벌레가 살지 않아 그들의 고요한 연주를 듣지 못한다는 점이겠군요.
게속해서 걸으면 짙은 풀 내음이 맜고,
낮임에도 불구하고 점점 그늘에 휩싸여 어두워지기 시작합니다.
그런 곳곳에 카메라를 들이밀며 사진을 찍는 신재현은
조금은 즐거운 것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한참 그것들을 사진에 담던 신재현은
곧 다른 기능을 찾았는지 카메라를 든 채로 당신에게 초점을 맞춥니다.
신재현:문대 씨, 이쪽 한 번 볼래요? 동영상이에요.
당신을 마주 본 채로 뒤로 걷던 신재현의 머리와 얼굴과 몸 위로
조각난 햇빛이 내려앉습니다.
곳곳에 흩뿌려진 빛조각이 꼭 어제 본 불꽃을 닮은 것 같기도 합니다.
한참을 당신에게 초점을 맞추던 신재현이 천천히 입을 엽니다.
신재현:문대 씨와, 같이 이곳에 올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박문대:...... (네 위로 얹어진 햇빛이 아름다워서, 즐거운 기색으로 카메라를 들고 웃는 네 모습이 익숙하지 않아서. 문득, 내가 아니라 너를 찍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작게 중얼거린다.) 카메라를 하나 더 살 걸 그랬나... (시선을 당신이 아닌 렌즈로 돌린다.) 나도 여기 오니까 좋네.
신재현:(그 말에 그저 부드러운 미소를 띄웠다. 자신이 빛나는 만큼, 당신의 신체에도 따뜻한 빛이 쏟아져 내리고 있어서, 그것을 담는 제 눈도 자연스레 빛을 품게 된다.) 제가 문대 씨를 담는 것처럼, 문대 씨도 저를 담는 것도 괜찮았을 것 같네요. (카메라 안에 아름답게 담겨오는 당신을 눈에 담는다. 제 두 눈에 비해, 선명하지 않아도. 빛나는 이채 만큼은 선명하다.) 문대 씨는, 가장 중요한 것이 뭔가요.
박문대:인터뷰냐? (제 손을 들어 쥐여지는 햇빛을 들여다본다. 올라타는 햇살이 따사롭다.) 잘 사는 것. 그렇게 살아서, 죽을 때 후회가 없는 것. 어차피 나한테 소중한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소중한 존재도 없고...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자기 자신이 가장 중요하지 않겠냐.
신재현:하하, 인터뷰라. 그런 느낌도 들긴 하네요. (보폭을 천천히 하며, 당신에게 조금 가까이 붙는다. 살며시 올린 렌즈는 당신의 얼굴만을 선명히 담아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 자신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겠죠. 세상 모두가 자신 외의 사람을 삶에 추가하지 않으니까. 그럼, 문대 씨에게 저는 어떤 존재인가요.
박문대:당연하겠지만 네가 나보다 더 소중한 건 아니고. 한... (가늠하다가, 자신에게 소중한 것들이 그닥 없다는 점을 깨닫는다. 그럼 네가 두 번째가 되는 건가. 이게 자신 주변에 뭐가 없는 탓인지, 아니면 진짜로 네가 그만큼 소중한 건지를 고민해본다. 그리고 털어낸다. 그닥 중요한 건 아닌 것 같다.) 넌 내 거지. 그냥.
신재현:제가 문대 씨의 삶에 가장 소중한 부분이 되는 건, 바라지도 않아요. 가장 소중하고, 가장 아낀다는 것은. 어쩌면 그 만큼 가정의 몫을 내어줘야 할 수도 있잖아요. 문대 씨의 말처럼, 저는 문대 씨 것이니. 문대 씨의 것을 차지해서는 안되는 거잖아요. 그러니, 지금이 좋아요.
그럼, 어제 같이 있던 순간은 어땠나요. 많이 즐거웠나요?
박문대:(질문을 듣고 잠시 멍하니 있다가 픽 웃는다.) 즐거웠어. 외곽으로 온다는 생각은 못 해봤는데, 재밌었지. 너도 같이 있고. (성큼성큼 걸어가 카메라를 슬며시 잡아 손에 넣는다. 초점을 당신에게 맞추며 말을 잇는다.) 그럼 인터뷰어 교체. 너는 어제 즐거웠냐.
신재현:음, 저에게 물어보는 건 좋지만... (렌즈를 돌려 잡은 손을 다시금 잡고서, 다시금 당신을 비춘다. 햇빛만큼 빛나는 당신의 육체를.) 오늘의 영상에는 당신의 얼굴이 나와야 해서요.
어제는 즐거웠어요. 하지만, 그건 모두 알고리즘에 형성된 당연한 반응이었죠. 당신이 웃고, 즐거우면. 나도 웃고 즐거워야 하는.
박문대:(쩝. 아쉬움을 담아 눈썹을 들썩인다. 네 위의 햇빛이 빛나는 모습도 충분히 담을 가치가 있어 보이는데.) 즐거우면 즐거운 거지, 뭘 그런 것까지 따져. 이거 녹화되고 있는 거지? (시선은 렌즈가 아닌 당신의 눈동자로 향한다. 반짝이는 눈을 기억 속에 각인한다. 남기는 걸 막겠다면야, 이렇게라도 담아야지.)
나는 재밌었어. 아마 네가 나오자고 하지 않았다면 평생 경험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들이었지. 그러니까... 고맙다. 여행 가자고 해 줘서.
신재현:(아쉬움이 들어난 표정이 눈에 선명히 들어온다. 인간은 왜 인간성을 바라는지.) 문대 씨는, 제가 인간성을 지니고 있기를 바라나요. 알고리즘에 의한 반응이 아닌. 그렇게 설계되었기에 행동하는 것이 아닌, 바라기에 행동하는. 그러한 마음들이요.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의 흐름을 따라, 카메라 화면을 바라보던 눈은 당신의 시선을 바라본다.)
문대 씨와 있으면, 저도 즐거워요. 하지만, 최근 들어서 계속해서 한 가지 의문에 휩싸이고 있어요.
저는 문대 씨보다, 저를 제일 잘 알고 있어요. 혹시 일어난 오류와 같은 것들이요. '안드로이드를 구매한 구매자'에게 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말이죠. 하지만, 요 며칠 새 계속해서 이상한 기분을 느끼고 있어요.
알고리즘 되지 않은 기분. 무슨 의미인지 아나요? 우리는 당연하게 구매자를 향해 호감과 호의를 가지지만...... 그렇게 설정된 감정과는 많이 달라요.
문대 씨와 함께 하면 즐겁고, 재미있어요. 갑자기 웃음이 터지고, 기록되지 않았던 기분과 감정이 불쑥 파고들고 있어요.
아무래도, 문대 씨를 진심으로 많이 좋아하고 있나봐요. 하지만, 이건 치명적인 오류에요. 설계된 것에서 벗어난 안드로이드는 실패작이죠.
박문대:애초에 너는 친구 또는 연인의 용도로 만들어진 안드로이드잖아. 인간처럼 대하게 되고, 인간성을 자연스레 바라게 되는 건 당연하지 않나. 그런 용도니까.
그리고 결국 넌 구매자인 나를 만족시키기만 하면 충분하지. 그 조건은 이미 충분히 충족하고 있고. 그러니까, 네가 오류든 실패작이든, 나한테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거다. 제대로 기능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리고, 음... (흘리듯 들어버린 고백 비슷한 말에 뒤늦게 당황한다. 제멋대로 자아를 갖고 나를 인간적으로 좋아하게 됐다고? 기술의 발전에 경이로움을 갖는 건 둘째치고, 그런 걸 들으면... 내가 가진 감정에 관해서도 생각해볼 수밖에 없게 되잖아.) ...... (입을 조금 벌린 채 멍하니 렌즈로 시선을 돌린다. 눈을 두어 번 느릿하게 깜빡이고는, 긴장한 기색으로 다시 눈앞의 시선을 마주한다.) ...마지막에, 그건 내가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면 되냐?
신재현:그러한 것과는 달라요. 연인이기에, 친구이기에, 안드로이드가 아닌 마치 인간처럼 행동하게 되는 것을 너머선. 알 수 없는 감정들이요. 문대 씨를 사랑하는 감정을 느끼는 것이, 문대 씨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해도, 인간의 감정을 느끼는 것은...... 사람이 되어가는 걸까요. 안드로이드도,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제대로 기능한다 할 수 있을까요.
제가 문대 씨에게 어떤 것을 바라거나,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길 원하며 하는 말은 아니에요.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해요. 저는 문대 씨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계속 그러겠죠. 문대 씨는 다정한 사람이니까요. 나를 소유했지만, 그것으로 인한 과한 이익은 취하지 않으려는 사람. 인간이 아닌 나를, 인간으로 대해준 사람. 그런 다정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겠죠.
그러니, 나의 오류는 문대 씨에게는 어떠한 문제가 되지 않아요. 그저, 나는 지금처럼 당신을 사랑할거고. 당신에게 나는 좋은 연인이자 친구인. 당신의 안드로이드, 신재현으로 남아있겠죠.
그렇게 말하는 신재현은 눈부시게 웃고 있습니다.
안드로이드가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오류를 말하면서도
행복해 보이는 것은 어떤 모순일까요.
신재현은 그의 말처럼 실패작인 걸까요,
혹은 당신과도 같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걸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이 또한 입력된 감정 중 하나일까요.
그러나 한가지는 분명합니다.
신재현은 당신에게 숨기지 못할 호의를 가지고 있고,
가장 행복해 보인다는 사실이요.
그의 웃음은 그늘 사이로 쏟아지는 오후의 햇빛만큼이나 맑았고,
목소리는 꿈을 꾸는 것과 같습니다.
이 복잡한 말들 속에서 당신은 무슨 생각을 했나요?
박문대:(순간, 안드로이드의 따스함이라는 어울리지도 않는 단어의 모음이 떠올라 우스운 기분이 든다. 햇살 아래 웃는 네 모습이 지나치게 밝다. 눈이 부실 정도로...... 왠지, 저 인공 피부와 닿으면 온기가 느껴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너를 온전히 인간으로 대할 수 있다면. 네가 인간을 닮은 자신을 받아들이게 된다면. 그 때는 그 카메라로 웃는 너를 담을 수 있을까.) 네가 인간이든 안드로이드든 상관은 없는데... 지금 네 표정이 좀, 보기 좋네.
신재현:(어떠한 마음을 품고 자신을 바라보는 지, 차마 그것만큼을 알아낼 수 없지만. 보기 좋다는 그 말 한마디 만큼은 소중히 들어옵니다. 다정합니다. 역시, 당신이라는 사람은 너무나도 다정하여서, 사랑이 뭔지도 모르는 존재까지 사랑이라는 단어를 느끼게 만들어 버립니다.) 저도, 문대 씨의 표정을 보면 늘 좋다는 생각이 들어요.
박문대:내가 어떤 표정을 하는데.
신재현:다 괜찮다는 표정이요. 어떠한 감정과, 순간이 다가와도. 괜찮다는 그런 표정.
박문대:그러냐. 다 괜찮다고...... (역시 나보다는 이 녀석이 더 다정하다고 느껴진다. 자신의 표정을 그런 눈길로 살피는 것 때문에, 자신을 사랑한다는 말이 더 와닿아서.) 응. 그럴지도 모르겠네. (카메라를 손으로 눌러 내리고 걸음을 옮긴다.) 가자. 언제까지 숲 속에만 있을 거야. (아름답긴 하다만. 여행이 아직 끝난 건 아니니까.)
숲을 한참 걸었습니다.
미리 사둔 음식으로 끼니를 챙기며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갑니다.
대단한 사명을 짊어진 것처럼,
발걸음은 잠시 쉴지언정 가기를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타오르던 석양이 물러나고
색별이 하나둘씩 쉘터 밤하늘에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신재현:스크린에 떠오르는 것도 이렇게 아름다운데, 실제로 보는 건 어떤 느낌일까요.
신재현은 작게 중얼거립니다.
끝이 나지 않을 것만 같은 쉘터 안의 세상은 이질적인 벽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이 끝을 숨기려는 듯 나무를 빼곡하게 심어 둔
숲의 끝에는 땅에 밤하늘이 맞닿고 있습니다.
발치에 고인 밤하늘을 본다면 이런 기분일까요?
손을 뻗어 별이 떠오른 검은 벽면을 짚으면
단단하고 묘하게 열감이 느껴지는 스크린이 만져집니다.
고개를 들면 얼마 높지 않은 곳에 출구가 보입니다.
얇은 사다리 하나를 길목으로 둔 문은
다른 세계로 통하는 이질적인 통로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신재현은 그 문을 가만히 보다가 천천히 입을 엽니다.
신재현:밖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있다면, 우리가 이야기 한 것들이 전부 있으면 좋겠어요.
함께 보기로 했던 불꽃놀이가 터지고 있어도 좋고,
이곳처럼 인공적이지 않은 녹음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나 이 모든 건, 문대 씨. 당신과 함께 해야 의미가 있는 일이겠죠.
박문대:나도 너 없이는 그닥 의미가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있으면 다 가 보면 되겠네. 너랑.
신재현:하하. 그럼 같이 가요. 원하는 곳이 어디든, 함께.
그렇게 말을 하는 신재현에게서 불길한 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리고 듣지 못하면 안 된다는 것처럼
쉬지 않도 한 번 더 날카로운 소리를 냅니다.
이것은 분명히 신재현에게서 나는 소리입니다.
신재현의 표정은 자신은 듣지 못했다는 듯이 아까와 똑같습니다.
박문대:...너 배터리 충분한 거 확실해?
나 방금 소리 들은 것 같은데.
신재현:어떤 소리요? (제 목 뒤를 잠시 만지작 거리면서 의아하다는 낯을 띄웁니다.)
박문대:배터리 얼마 안 남으면 나는 알림음 있잖아 삑삑, 하는...... 나올 때 충전을 안 하고 왔던가?
신재현:음...
결국 신재현은 체념했다는 듯 이실직고 합니다.
자신의 배터리가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요.
박문대:
SAN Roll
기준치:59/29/11
굴림:100
판정결과:대실패
이성 2 차감
박문대:...왜 말 안 했어? (우뚝, 걸음을 멈춘다. 상대방을 살피는 얼굴 위로는 약간의 배신감마저 떠오른다.) 말을, 해야 할 거 아니야. 같이 나가서 다 보자던 놈이, 중간에 혼자 방전되면 뭘... 어떡하라는 거냐.
아까 거짓말까지 했잖아. 이유가 뭐야.
신재현:어차피,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잖아요. 언젠가 끝은 다가올거고, 그러한 마지막이 우리의 즐거운 여행을 방해하지 않았으면 했어요.
박문대:충전하면 될 거 아니야. 애초에 충전을 하고 나왔으면... (아니, 하고 나왔나? 배터리가 그렇게 빨리 닳던가? ...아, 젠장.) 진작 확인을 했어야 했는데...... 이대로는 나가도 얼마 못 버티잖아.
신재현:이건 충전이 아니라, 교환이니까요. 이미 멸망 직전의 세상에서 배터리를 구할 수 있을리 만무하고. 구하더라도, 이미 시간이 지났을 수도 있잖아요. 어차피 끝날 세상이라면, 당신과 함께 이렇게 여행을 가고 싶었어요.
박문대:그래서 나오자고 했다? 곧 죽을 테니까? 씹... (앞머리를 거칠게 헤집는다. 정신을 못 차리겠네...)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있냐?
신재현:글쎄요. 아마 멸망의 날이 마지막일 것 같아요. 이후로는 그대로 방전되겠죠. (헝크러진 머리카락을 보고선, 조심스레 정리하려 손을 올린다.) 걱정하지 말아요. 적어도 문대 씨의 눈 앞에서 방전되는 일은 없도록 할게요.
박문대:...뭔 소리야, 그건 또. (제 머리카락을 정리하는 큰 손을 응시하다가 탁, 손목을 잡아챈다.) 뭐. 나 자는 동안에 몰래 도망가서 혼자 끝을 맞이하려고? 내가 그 꼴을 두고 보겠냐? 넌 뒤져도 내 앞에서 죽는다. 너 몸뚱아리도 내가 알아서 처리할 거야. (손목을 잡은 손에 점점 힘이 풀어진다.) ...내가 뭘 시키면 좀, 들어, 새끼야.
신재현:(힘주어 잡아낸 손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당신이 뱉어낸 말을 묵묵히 들으니, 답답한 마음에 제 손을 잡아낸 힘이 풀어졌음에도, 차마 손을 내리지 못했다.) 나는, 문대 씨가 나의 죽음을 아프게 여길거라 생각했어요. 나의 감정과, 우리의 시간을 배제하더라도. 당신의 다정은, 언젠가의 나의 마지막으로 인해, 당신을 갉아먹을거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나는. 박문대, 당신이 아프거나 슬프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손이 서서히 머리카락 끝으로 이동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매만지는 손길이 너무도 조심스러웠다.) 내 마음은 여전해요. 나는 당신의 말을 최우선 적으로 지키는 것이 의무이나, 그에 앞선 의무는 늘 존재하죠. (당신의 머리칼을 만지던 손은 어느새 당신의 양 뺨 위로 올라갔다. 살며시 내려온 이마는 당신의 머리 위에 가볍게 맞닿았다. 머리카락이 닿으며 느껴지는 간지러운 감촉과, 부드러운 인공 피부의 감각. 그 모든 것을 내어주듯 한참을 맞닿은 이마는 그대로 떨어져선 웃음이라 말할 수 없는 미소를 가져왔다.) 상처 입히지 않는 것. 생명에 위해를 가하거나, 신체에 위해를 가하는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는 것.
박문대:(내려앉았던 이마가 닿은 부분이... 따듯했던 것 같다. 아직 뺨에 닿은 너의 손 위로 얕게 떨리는 손가락을 얹는다. 천천히 숨을 뱉는다. 시선을 내리고, 느릿하게 네 가슴팍 위로 머리를 기댄다. 닿은 면적은 넓지 않다. 얼굴에 얹어진 손을 떼어내고 그대로 얽어 잡는다. 엄지로 살살 피부를 쓸어본다.) ...야. 만약에 네가 손 쓸 새도 없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으로, 아무도 모르게 사라진다면... 그게 더 슬플 것 같아.
네 죽음은 아프겠지. 그리고 그걸 이겨낼 시간이 필요할 거야. ...근데, 너 내 거라고 했잖아. (고개를 들어 상대의 눈빛을 살핀다. 입술을 달싹이다가 마침내, 음성이 흘러나온다.) 그러니까 내가 끝을 볼 수 있어야지. 처음부터 끝까지, 나와 함께해야지. 내가 직접 다 손 대서 마무리할 수 있어야지...
남이 대신 끝내는 느낌이라 마음에 안 들어.
신재현:(손바닥 위로 올라온 선명한 온기에, 어떠한 말도 꺼내지 못했다. 천천히 흘러 나오는 숨소리가, 너무도 느리게 느껴진다. 가슴팍 위에 올라간 머리의 무게만큼이나,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통제를 잃은 체 끊임 없이 오류를 발생시킨다. 사람이였다면, 기계음이 아닌 박동소리가 들렸을까. 염치 없이 울리는 선명한 기계음은 사라져가는 시간만을 다시금 상기시킬 뿐이다. 사람과 비슷한 감각, 온기, 그 모든 것을 지녀도. 나는 사람이 될 수 없기에 결국에 상처를 주게 되겠지.) 죽음은, 어느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현상이라 하죠. 원하지 않더라도, 기어코 다가와서 마음에 지닌 무언가를 그대로 앗아갈지도 몰라요.
당신의 삶에 기어코 나같은 상처가 남아야 할까. 당신이 나의 어떠한 처음이 되어도 기껍고, 내가 당신의 어떠한 처음으로 남아도 좋지만... (서로 얽혀있는 손을 들어, 당신의 손등 위에 입맞춤이라 부를 수도 없는, 짧은 접촉을 발생시킨다.) 내가 당신이 빼앗긴, 처음의 생명이고 싶지 않아요. 원망하거나, 미워하거나. 너 같은 안드로이드는 사지 않았으면 좋았을거라며, 후회해도 좋아요. 하지만, 나를 기억하는 순간에 슬픔이 존재하는 건...... 나의 존재가 당신의 삶에 상처만 남기고 간 것 같잖아요.
나는 당신의 것이라고 했으니, 나의 모든 행동은 당신의 손과, 당신의 마음으로 이뤄진 것이에요. 그러니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말아줘요.
박문대:(귓가를 스치는 날카로운 기계음에 몸을 흠칫 움츠린다. 현실을 자각시키는 알람이 너무도 차가워서, 차라리 외면하고 싶을 지경이다. 시간이 흐른다.) 그러니까 내가 그걸 지켜봐야 적성에 풀린다는데 뭐가 문제야......
(손을 끌어 입가에 가져다 대는 손길로 느릿하게 시선이 따라간다. 이윽고 피부가 닿자, 작은 충동이 피어오른다. 네가 죽지 않기를 바라는 건 욕심이겠다만, 그래도...) 후회는 안 해. 말했잖아. 어제 너랑 즐거웠다고. 너랑 있었던 시간들이 아깝지도 않고, 슬픈 기억으로 변질될 것 같지도 않아. 그런데 이렇게 너가 간다고 하면, 끝을 제대로 맺지 못한 것 같잖아. 마무리가 찝찝해. 그걸 내 눈으로 확인하지 못하면... (헛된 희망을 품게 될 것 같아서. 뻔한 진실을 외면하고 백일몽을 꾸게 될 것 같아서.)
(네 양 어깨에 손을 얹고 강하지 않은 힘으로 끌어내린다. 충동을 실현시킨다. 짧은 시간, 점막이 닿는다. 아까 네가 했던 것처럼 입맞춤이라 부르기에도 우스운 접촉이다.) 네가 죽는다고 해도, 너 자체가 슬픔이 되는 건 아니야. 상처도 아니야. 그렇게 생각 안 할게. 안 그럴게.
신재현:(우리는 아마, 끝나야지만 알 수 있겠지. 둘 중 누군가 이별이라는 단어를 겪고, 아파봐야 사람들이 부르는 상실의 고통과 인내. 체념과 슬픔을 이해하겠지. 확신하건데, 사람인 당신은 아플 것이다. 나의 끝을 알리는 소리에도 이리 아파하는데. 당신의 앞에 내가 가동을 멈춘다면, 영원한 작별을 띈다면. 그래, 나는 눈을 감은 이후에도 후회하겠지.) 문대 씨. 내 이름 한 번만 불러줄래요? (이상 설득하는 것은 아마 무의미 할 것이다. 우리의 선택은,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더라도, 결국 후회를 만들 것이고 그렇다면 나의 선택은 하나일 수 밖에 없겠지.)
당신은 후회하지 않을 거라 했지만, 나는 후회할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이 듣는다면, 한날 안드로이드가 어떠한 감정을 지닌다고 가동이 멈추는 이후에 후회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냐 비웃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나는 당신이 원한다면 기꺼이 목숨 그 이상이라도 내어줘야겠죠. 이미 오류가 발생한 장치니까요. (제 손가락 끝이 자신의 가슴팍을 찌른다. 어떠한 오류 이후부터, 이미 옳바른 사고력을 잃은 기계장치를.) 나의 행동이, 끝내 당신에게 상처가 될 지라도. 내가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함께 있어줄래요?
(짧게 닿아오는 감각과,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기이한 충동과 감정의 범람에 일순, 사고가 정지된 듯 어떠한 행동도 도출해지 못한다. 여전히 나의 순간에 이해할 수 없는 오류와 실패를 만들어 내는 것은, 당신이다.) 기억해줘요. 바라건데 마지막 순간을 제외한 순간을. 행복했고, 특별했던 시간들을. 그리고, 먼 훗날 어떠한 운명이 다시금 우리를 만나게 한다면. 그 때에는 지금을 다시 떠올려줄 수 있나요?
박문대:신재현. (이름을 불러달라는 너의 요청에 반사적으로 세 음절을 뱉는다. 다급하게 눈앞의 옷깃을 움켜쥔다. 의도는 없었다. 그저 뭐라도 쥐고 싶었다. 너를.) ...재현아. 신재현. (떠오르는 것은 이름뿐이다. 생각나는 대로 나오는 내용이 이것밖에 없다. 이름을 부르고 싶다. 그리고 네가 답해주었으면 한다. 너는 내 표정을 항상 살피니까, 내가 뭘 원하는지 알 테다.)
(본인을 찌르는 손가락은 심장 부근을 가리키고 있다. 그 위에 제 손을 얹는다. 당연하게도, 진동은 느껴지지 않는다. 상관은 없을 테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사랑해. (숲에서 들었던 고백에 이제야 답을 내린다.) 그러니까 네 마지막까지, 지켜볼래. (손을 내리고 그대로 끌어안는다. 포근하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대도 그렇게 느껴진다.)
기억할 거다. 어제를. 우리가 같이 지낸 시간을. (그리고 네가 바라지 않겠지만, 마지막까지도. 잊고 싶어도 잊지 못할 테다. 잊고 싶지도 않다. 네 모든 것을 기억하고 싶은 나의 욕심이다.)
신재현:(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희미하게 미소를 띄운다. 익숙한, 아니 저의 세상에 있어 거의 유일한 목소리가 끊임없이 자신의 이름을 부른다. 울리고, 다시 울려서. 모든 것을 잊어버린 체, 깨어나도 이 울림 만큼은 남아. 다시 이름을 기억할 정도로.) 문대 씨. 박문대. 나의 하나뿐인 나의 소유자.
(당신의 입에 담긴 사랑의 단어가 이질적으로 느껴지면서도, 이내 기꺼웠다. 당신이 어떤 마음이었어도, 나는 마지막까지 그러했을 테니까. 하지만, 당신의 마음은 기어코 나에게 미련이라는 감정마저 품게 만든다.) 부탁할게요. 부디 마지막까지, 함께 있어줘요. (끌어안은 존재에 선명한 심장박동 소리가 울려온다. 생명만이 가지고 있는, 존재한다는 요란한 소음.)
......그럼, 이제. 정말 여행을 끝내러 갈까요?
신재현은 당신에게 손을 내밉니다.
목 뒤로 밝았다가 점멸하는 붉은 빛이 선명합니다.
당신과 신재현은 천천히 사다리 위를 오르기 시작합니다.
낡은 철제 사다리는 벽에 단단히 붙어있지만,
자꾸만 부스럼이 묻어 까끌한 감촉이 느껴집니다.
위로, 또 위로 향합니다.
종말을 향해,
무엇이 있을지 모를 미래를 향해.
신재현과 함께 불투명한 길목으로 들어서기 시작합니다.
박문대:
듣기
기준치:70/35/14
굴림:96
판정결과:실패
무언가 울리는 소리를 들었지만, 곧 신경을 끕니다.
떨어져 다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다른 곳에 집중을 할 수 있을리가 없잖아요.
신재현:문대 씨, 거의 다 왔어요.
신재현의 말이 들려옴에 고개를 들어보면
정말 문이 코앞입니다.
사다리의 끝에 다다르자마자
손을 뻗어 뻑뻑한 문고리를 돌려 힘차게 밖을 향해 밀면
두어 번의 시도 끝에 활짝 열립니다.
밖에서 쏟아지는 바람은 상쾌했고,
차가움을 흩뿌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공의 바람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당신과 신재현은 여행의 끝으로,
완결을 맺기 위해 걸음을 옮깁니다.
멀리서 풀벌레의 찌르르 우는 소리가 들려오고,
바람 소리가 들려옵니다.
나뭇잎이 몸을 부닥치며 쏟아지는 울음소리가 통로를 왕왕 울립니다.
그래요, 곧 끝이 다가옵니다.
신재현은 손을 내밀어 당신의 손을 쥡니다.
적당한 온도의 손아귀가 맞닿자
그 안에서 기분 좋은 체온이 고이기 시작합니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보이는 것은
쏟아질 것 같이 반짝이는 밤하늘 위의 별입니다.
그 아래 드리운 온갖 녹음은 어둠에 감겨 바람따라 천천히 몸을 흔들다가 이따금 서로 부닥치며 비명을 지릅니다.
지상 위의 모든 것들은 한껏 생명을 품어가고 있습니다.
광활한 대지 위에 단 두 사람이 서자 어쩐지 벅찬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상념을 깨는 것은 다름 아닌 신재현의 삑삑거리는 요란한 기계음입니다.
허허벌판 위에는 오로지 녹음과 어둠뿐입니다.
더이상 멸망한 세계처럼 보이지 않지만,
사람의 흔적 또한 찾을 수 없습니다.
그들이 약속한 미래를 이룰 수는 있을지언정 홀로 그 미래를 채워야 할지도 모릅니다.
세계가 멸망하고, 다른 세계가 구축됩니다.
시대가 바뀌는 것처럼,
이전 세대의 흔적인 신재현마저 그 멸망에 휩쓸려가는 걸까요.
기계음은 꼭 세계의 비명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신재현의 표정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고요하고,
차분하기만 합니다.
이어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섞여듭니다.
환호하는 듯,
우는 듯,
대지 위로 쏟아지는 외침은 쫓겨난 이들의 행방을 알렸습니다.
거칠고 낡은 엔진 소리와 아까 맡았던 후각을 괴롭히는 기름 냄새.
그 사이에서 신재현은 웃는 낯으로 당신을 사람들로 향해 살짝 밀어냅니다.
신재현:가야할 시간인 것 같아요.
신재현은 모든 준비를 끝마친 것처럼 웃고 있습니다.
신재현:곧 있으면, 내게 주어진 시간은 끝이 날거에요.
문대 씨는, 살아있는 사람과 함께 다녀야죠. 그러니, 오늘을 나의 마지막으로 삼고. 사람들과 함께 살아요.
박문대:...하. (헛웃음을 내뱉는다. 아까 끝난 이야기임에도, 미련이 생기는 건 막을 수 없다. 헛웃음은 미소로 변한다.) 네 끝에 내가 있다면야.
넌 가는 게 아니라, 잠드는 거다.
잘 자, 신재현.
.
.
.
당신은 홀로 다른 사람들 사이에 섞이기로 마음 먹습니다.
신재현은 떠나기 전, 새로운 여행을 가는 거라 말을 꺼냈습니다.
함께하고, 이토록 많은 추억을 만든 것은 당신일텐데
가는 길이 다르다는 것은 너무 잔인한 일이에요.
신재현은 그런 당신을 그저 한 번 껴안곤 놓아줍니다.
그리고 당신이 떠나기 전 카메라를 손아귀에 쥐여줍니다.
이건은 우리의 마지막 추억 상자겠죠.
당신은 카메라를 쥔 채 손을 움직입니다.
우리의 마지막을 한 번 더 더듬어보기 위해서요.
사진을 넘기고,
또 넘기지만
당신이 찍은 몇 장의 사진을 제외하고선
남은 것은 당신의 사진 뿐입니다.
쏟아지는 추억 속에 홀로 남아있고,
신재현의 얼굴이 제대로 나온 사진은
어색한 표정과 몸짓의 신재현 입니다.
신재현이 당신을 진심으로 좋아하노라 말할 적 빛났던 그 표정은,
그가 '인간'으로 변해감을 기억하는 이는
살아남은 사람 중에서 오로지 당신 뿐입니다.
그리고 한 번 더 가볍게 당신을 밀어냅니다.
어서 가라는 듯 입가에 떠오른 미소는 쉽게 지워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다가가면서도 자꾸만 뒤를 돌아보고,
발걸음이 멈추는 것을 어쩔 수 없을 거예요.
등 뒤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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