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무리+수몰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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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무리

...
[ 미안, 갑자기 일이 생겼어. 다음 번에 보자. ]
혼자 이곳에 서 있는 게 짜증날 정도로 하늘 맑은 오후
딩동
하는 경쾌한 알림음과 함께 도착한 문자 메시지.
이걸로 박문대가 당신과의 약속을 몇 번 째 파투내는 건지 셀 수도 없을 것만 같습니다.
물론 그도 당신도 각각의 일로 바쁜 것은 이해하고 있습니다만,
최근 들어 박문대의 행동이 몹시 이상합니다.
유독 당신을 피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죠.
심지어는 바로 다음 날로 다가온,
두 사람이 이를 악 물고 스케줄을 맞춰서 가려고 했던,
벼르고 벼르던 우주쇼―유성우를 보기로 한 날을
일방적으로 관계의 끝을 고하는 날로 뒤바꿔버리다니.
그 터무니없는 통보 이후로 몇 번을 연락해도 그가 만나주지 않자,
당신은 오늘 기어이 박문대의 숙소로 들이닥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화면에 떠오른 애꿎은 문자열들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쯤,
지나가던 대광장의 커다란 전광판에
긴급속보라는 뉴스 기사가 하나 송출됩니다.
뉴스 속보
긴급 속보입니다.
정재계 유명 인사들의 이유를 알 수 없는 죽음으로 최근 시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은 연쇄 살인 사건이 어젯밤 또 하나 발생했습니다.
사망 추정 시각 오후 11시 50분, 피해자인 XX시 시장 A씨는 자택에서 사체로 발견 되었습니다.
살해 방법은 이전의 사건들과 동일하며,
피해자는 이번에도 수차례 이어진 난도질 끝에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검찰은 여전히 연쇄 살인의 목적조차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실정으로... …
날 좋은 대낮에 듣기에는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지는 끔찍한 뉴스입니다.
그러고보니 요새, 이름 있는 유명 인사들만 살해한 후 홀연히 사라지기로 유명한 연쇄살인으로 세상이 꽤 흉흉해졌습니다.
자신의 연락을 무시하는 그에게 야속함이 들었으나,
하필 XX시는 그가 사는 지역인 탓에 괜스레 이어지는 걱정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당신들도 아이돌이니까요.
마저 박문대의 숙소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던 도중 당신은,
문득 무언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위화감에 사로잡힙니다.

| 기준치: | 75/37/15 |
| 굴림: | 84 |
| 판정결과: | 실패 |
주변을 둘러봐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딘가 한적한 기분이 드는 건...
그냥 당신의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서가 아닐까요?

그럴지도 모르죠.
예민해진 것 같아요.
어쨌든 당신은 속도를 좀 더 높여 빠른 걸음으로 그의 숙소를 향합니다.
마침내 도달한 박문대의 숙소 앞은
예전에 왔던 집과 동일한 장소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을씨년스럽고 으스스합니다.

| 기준치: | 75/37/15 |
| 굴림: | 20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무슨 일이 있었나.)
문 한 구석에 짙은 얼룩이 져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꽤 오래된 얼룩에 몇 번 새로 덧입혀진 듯 군데군데 색이 다릅니다.

| 기준치: | 70/35/14 |
| 굴림: | 80 |
| 판정결과: | 실패 |
집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물론 지금 테스타는 휴가 중이라 박문대를 제외하곤 아무도 없을 테지만...
박문대도 어딜 나간 것일까요?
문을 두드리거나 초인종을 눌러도 좋습니다.

띵동.
...
...
한참 기다려도 반응이 없는데......
어?
자세히 보니, 문이 잠겨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안으로 들어갈까요?

끼익... 어딘가 불길한 소리를 내며 문이 천천히 열립니다.
집 안으로 발을 들이자
온갖 창문에 커튼을 쳐둔 채
조명 하나 켜져있지 않은 어두운 내부가 눈에 들어옵니다.
현관과 가장 가까운 우측에 작은 방이 하나, 옆에 그보다 조금 더 큰 방이 하나,
그 맞은편에 화장실,
눈앞의 복도,
마찬가지로 큰 방이 복도를 따라 들어가며 나란히 2개,
아마 제일 가까운 방이 박문대의 독방이었을 겁니다.

작은 독방
문이 반쯤 열려있는 작은 방에 발을 들이자마자, 문 너머에서 발작과도 같은 외침이 들려옵니다.


순간적으로 들려오는 고함에 깜짝 놀랐으나,
당신은 곧 이 외침이 박문대의 목소리임을 깨닫습니다.
금세 어둠에 익숙해진 눈을 들어 주변을 훑어보면...
...
맙소사.
마치 온 세상과 차단되듯 캄캄한 방은 물론,
여기저기 널려있는 옷가지들.
그리고, 몇 겹이나 되는 이불에 파묻혀
얼굴만 내놓고 놀란 표정으로 당신을 바라보는 박문대.





이불을 쥐고 있는 박문대의 손이 미약하게나마 떨리고 있습니다.
당신을 똑바로 마주보고 있지도 않고요.
...불안한 걸까요?
두려운 걸지도 모릅니다.
무엇이?
일단 그를 진정시키는 게 좋겠습니다.


정리되지 않은 말들이 뚝뚝 끊깁니다.
어떻게든 당신을 내보내려고 하는 것 같아요.
누가 널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 기준치: | 50/25/10 |
| 굴림: | 20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당신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 천천히 숨을 토해냅니다.
정신줄을 어떻게 잡은 모양이에요.





진짜 알츠하이머라고 해도, 공표하고 싶진 않으니까. ...이대로 잠적하는 게 낫다. 너한테서도, 멤버들에게서도, 팬들에게서도.



그는 입을 꾹 다물 뿐입니다.
이미 결정된 걸 번복할 마음은 없는 것 같아요.
진정은 통한 모양이지만, 여전히 당신을 보는 눈은 복잡합니다.
한참을 꾹 쥐고 있던 이불을 내려두고 앉아만 있던 몸을 일으킵니다.
이미 여기까지 왔으니 조금 쉬다 가라며, 바닥에 널부러진 옷가지를 주워 정리합니다.
당신도 그를 거들어 정리를 돕던 도중,
책상 한 구석에 쌓인 크고 작은 메모장 더미를 발견합니다.

메모장을 보려고 하자 박문대가 책상에 있는 메모장을 급히 손바닥으로 가립니다.
그러고선 당신의 눈치를 한 번 보더니 메모장을 한 데 모아 정리합니다.

기억이 자주 끊겨서. ...가만히 있을 수가 있어야지.
네가 볼만한 내용은 아니다. 잊어버려.

| 기준치: | 75/37/15 |
| 굴림: | 73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너덜너덜 해보일 정도로 손 때가 꽤 묻은 것으로 보아,
그의 말대로 상당히 자주 사용하는 모양입니다.
그만큼 불안감이 큰 걸까요.

대강 정리를 끝낸 후
어두웠던 내부에 불을 밝히고는
그는 이른 저녁이라도 만들어 주겠다며
당신을 거실의 소파에 앉혀놓고 부엌으로 향합니다.
당신은 그를 기다리는 동안 집안의 한 곳을 조사할 수 있습니다.

진짜?
다른 곳을 살펴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저 거실은 깔끔하기만 할 뿐입니다.
TV를 자주 보았는지 소파에 리모컨이 가지런히 놓여 있군요.

작은 독방
당신과 그가 열심히 치운 방입니다.
처음 들어왔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하고 깔끔해졌군요.
뿌듯함까지 느껴집니다.

| 기준치: | 75/37/15 |
| 굴림: | 16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박문대가 한 구석에 밀어놓은 메모장 더미로 눈길이 향합니다.
가장 아래, 조심성 없이 펼쳐진 메모장에 쓰여진 문장이 하나.
< ... 이 가장 큰 걸림돌... ...것은 ... ...고, ... ...이 다가왔다. 그러니 더는... ... 없다. 그 날에 ... 끝을 낼 것. >

신재현, 저녁 먹어라.
그가 당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이건... 놔두고 가는 게 좋겠죠.
읽었다는 티를 내면 그를 겨우 진정시킨 이유가 없어질 테니까요.

밖으로 나온 당신에게 간단한 주먹밥이 담긴 접시를 내밀며 뒷목을 문지릅니다.
집에만 박혀있다 보니 재료가 거의 다 떨어졌다고요.
그 접시를 건내고선 거실로 당신을 이끕니다.

| 기준치: | 65/32/13 |
| 굴림: | 8 |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얼굴에 떠오른 난처함에 약간의 당황과 불안이 섞여 있습니다.
...그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네요.
부엌 쪽으로 자꾸 시선이 가는 걸 보니 저쪽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무언가 빨간... 양념?
주먹밥은 평범한 참치마요라는데 말이죠.

아무래도 그러진 않습니다.
수상해요.
부엌으로 가볼까요?

부엌으로 걸음을 옮긴 당신은 몸이 저절로 굳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이제서야 눈에 들어오는 그의 손톱 아래도, 피가 스며들어가 있습니다.

그 이질적인 풍경과 그의 모습에, 당신은 이유 모를 섬뜩함을 느낍니다.

| 기준치: | 60/30/12 |
| 굴림: | 1 |
| 판정결과: | 대성공 |

| 기준치: | 80/40/16 |
| 굴림: | 77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그의 집으로 오기 전, 광장의 전광판에서 봤던 뉴스를 떠올립니다.
정재계 유명 인사들의 이유를 알 수 없는 연쇄 살인 사건.

살해 방법은,
수차례 이어진 난도질.
의심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박문대는 뭘 그런 걸 보냐며 급하게 당신의 팔을 잡아끕니다.
안색이 좋지 않네요.
당신의 모든 불안과 의문에 답해주지 않겠다는 듯,
아무것도 묻지 말라고 못 박으면서요.
거실 소파에 당신을 앉힌 그는
음식 대신 커피를 내와 당신의 옆에 앉으며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 당신에게 보여줍니다.
보이는것은, 사진 몇 장과 일기 같은 것이 쓰여진 종이 몇 장.
보면 그와 함께 놀러갔던 곳에서 찍은 사진과,
그 추억이 얽힌 일기들입니다.
당신과 놀러 갈 때면 사진기를 들었던 그이니,
당신과의 추억이 잔뜩 남아있는 것도 당연하긴 합니다만.
사진을 인화해서 당신에게 보여주는 것은 처음이에요.
이것도 '습관'의 일부일까요.






















신재현.


나는 이미, 네가 아는 ‘박문대’가 아냐.
온전한 나는 과거에만 남아 있을 거고, 내 생각이 변하는 일은 없을 거다.
시계를 흘끗 본 그는 당신의 손을 잡습니다.

우리가 다시 보는 건 내일이다.
내 말, 기억해. 신재현.
당신의 손에 들린 것은... 메모장입니다.
그러고선 당신의 등을 떠미네요.
이제 그만 꺼지라며 툭툭 밀칩니다.
이럴 땐 누가 뭐래도 박문대 같은데 말이죠.


그렇게, 문이 닫힙니다.
밖으로 나오니 꽤 시간이 지났던 모양인지, 하늘은 어느새 어둑해져가고 있었습니다.
그를 만나기 전보다 더한 찝찝함과 불안함을 안은 채 집으로 돌아갑니다.
...
오늘은 여러모로 피곤한 하루였습니다.
집에 도착한 후 무엇도 손에 잡히지 않아
시간만 허비하다 어둑한 밤이 되어 겨우 잠자리에 들기 직전,
그가 주었던 메모장이 눈에 들어옵니다.
박문대에게 든 그 어떤 의문도 해소하지 못한 채 되돌아온 오늘,
손에 쥐여진 메모장은 당신에게 해답을 줄 수 있을까요.
메모 장
1 p
이 노트가 절대 네 손에 들어갈 일이 없었으면 한다.
그런데도 네가 이걸 봤다면, 너는 기어이 나에게 찾아왔거나 또는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겠지.
지금부터 네가 알고있는 나는 전부 잊어버려라. 여기 쓰여있는 것만 기억해.
2 p
너는 지금, 이 세상에서 제일 위험한 사람이 됐으니까.
당신이 다음 페이지를 넘기기 직전, 휴대폰의 전화벨이 울립니다.
발신자는 박문대.
당신은 전화를 받고, 흘러나오는 박문대의 목소리와 동시에 페이지를 넘깁니다.
[야, 신재현.]
그리고 눈에 들어온 글씨.
3 p
첫째, 내가 너한테 문자가 아닌 전화를 걸 경우.
[내가 또 기억이 끊겨서 말이야. 오늘 낮에, 너, 우리집에 왔었지.]
[해가 저물기 전에, 돌아갔고.]
4 p
둘째, 네가 오늘 뭘 했는지 물어볼 경우.
[메모하는 습관이 생겼다고 했잖아. 그거 쓰려고.]
[네가 뭘 했고... 뭘 봤는지까지, 자세하게 말 좀 해봐.]
5 p
셋째, 네 집의 위치를 물어보거나 확인할 경우.
[아, 아니다. 됐어. 너희 집 위치가... XX동? 기억이 없어지는 게 이렇게나 불편할 줄이야.]
6 p
메모장 속의 그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요.
그렇다면 수화기 너머의 박문대는?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울리는 초인종 소리는,
똑똑, 저 부드러운 노크 소리는?

| 기준치: | 60/30/12 |
| 굴림: | 68 |
| 판정결과: | 실패 |
4
이성 4 차감합니다.
신재현.
문, 열어.

문 너머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들려옵니다.

아니면... '내'가 어떻게 되어도 상관 없어? 얼른 문 열어줘, 신재현. 그렇지 않으면 내가... ... 아, 그래, TV에 자주 나오는 그 사람들 꼴이 날텐데.

| 기준치: | 56/28/11 |
| 굴림: | 64 |
| 판정결과: | 실패 |
2
이성 2 차감합니다.
청려, 일시적 광기로 인하여 일정 기간 동안 박문대를 향한 집착과 불안이 형성됩니다.



모든 걸 알아야 속 시원하지 않겠어?


| 기준치: | 60/30/12 |
| 굴림: | 4 |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 기준치: | 85/42/17 |
| 굴림: | 100 |
| 판정결과: | 대실패 |
그럼 어쩔 수 없지.
잠시 그가 조용해지더니
문에서 커다란 굉음이 들려옵니다.
피해요, 탐사자!

| 기준치: | 32/16/6 |
| 굴림: | 32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쾅, 쾅!!
부숴질 듯이 두들겨진 문이 끼이익, 기어코 열립니다.
무슨 짓을 한 걸까요.
문이 열리자 보이는 것은 그린 듯한 웃음을 짓고 있는 박문대입니다.
그는 천천히 집 안으로 발을 들입니다.

너 때문에 괜히 힘만 뺐잖아.
오늘 뭘 봤어? 아니... ... 뭘 봤던 상관 없지.
어차피, 아무데도 못 말하게 될테니까.
왜 찾아왔어?
나는 너를 지키려고 했는데.
그리고는 당신이 무언가를 할 새도 없이,
그가 당신에게 달려들어 칼을 휘두릅니다.

| 기준치: | 25/12/5 |
| 굴림: | 7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 피해: | 1 |

| 기준치: | 32/16/6 |
| 굴림: | 96 |
| 판정결과: | 대실패 |
청려, 체력 1 감소합니다.
가만히 맞아줄 수만은 없죠.
지금 여기서 죽으면 나중에 변명도 못 하잖아요.
그를 다시 봐야하지 않겠어요?


당신이 먼저 치지 않으면, 그 잠시를 못 참고 그가 달려들 것입니다.

| 기준치: | 55/27/11 |
| 굴림: | 21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 피해: | 3 |

| 기준치: | 40/20/8 |
| 굴림: | 80 |
| 판정결과: | 실패 |
박문대 체력 3 감소합니다.

| 기준치: | 25/12/5 |
| 굴림: | 78 |
| 판정결과: | 실패 |
| 피해: | 1 |

| 기준치: | 55/27/11 |
| 굴림: | 31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 피해: | 1 |

| 기준치: | 40/20/8 |
| 굴림: | 99 |
| 판정결과: | 대실패 |
박문대 체력 1 감소.

| 기준치: | 25/12/5 |
| 굴림: | 19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 피해: | 4 |

| 기준치: | 32/16/6 |
| 굴림: | 20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청려 체력 4 감소.

| 기준치: | 55/27/11 |
| 굴림: | 78 |
| 판정결과: | 실패 |
| 피해: | 1 |

| 기준치: | 25/12/5 |
| 굴림: | 5 |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 피해: | 2 |

| 기준치: | 32/16/6 |
| 굴림: | 17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청려 체력 2 감소.

| 기준치: | 55/27/11 |
| 굴림: | 100 |
| 판정결과: | 대실패 |
| 피해: | 1 |
숨이 점점 딸려옵니다.
몸이 무거워, 결국 바닥에 무릎을 꿇습니다.
손으로 짚은 게 무색하게 몸은 바닥으로 쓰러지고,
금방이라도 의식이 끊어질 것만 같던 그 때,
우뚝, 모든 행동을 멈춘 그는 당신을 보고는 무너져내리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손에 들고 있던 칼을 떨어트립니다.

| 기준치: | 60/30/12 |
| 굴림: | 49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3
박문대 이성 3 감소.

...


신재현......
아직 안 된다고. 내가 아니라고 했잖아.
다시 만나는 건 그 날이라고 했잖아……
내일이라고, 기억하라 했잖아...
대답을 해야 하는데,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가 않습니다.
힘이 드는 건지,
당신의 앞에서 무너져 내리는 박문대의 모습 때문인지.
덜덜 떨리는 그의 손이
당신의 머리카락, 눈, 상처들을 훑고
핏물을 닦아내며,
붉게 짓물어진 눈가가 당신에게 사죄하는 듯합니다.
당장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처럼 일렁이는 네가.
미안하다고.
그 답지 않게 떨리는 목소리로 한참을.
마치 그 말밖에는 할 줄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너라면, 너한테만은…
…미안하다. 하지만 너밖에 없어.
내일, 별무리가 흩어지는 밤에, 네가 나를......
흐느끼듯 이어지는 목소리가 귀에 다 담기지 못하고 흘러내리는 것 같습니다.
내가...... 너를,

| 기준치: | 70/35/14 |
| 굴림: | 64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그 말을 끝으로 당신은 정신을 잃습니다.
의식이 완전히 흐려지기 직전, 당신의 뺨으로 떨어져 흘러내리는 눈물 방울의 감촉을 느끼며.
암전.
...
당신은 온몸을 덮쳐오는 고통과 함께 힘겹게 눈을 뜹니다.
몇 번 눈을 깜빡이고, 주위를 둘러보자 보이는 풍경은,
어제의 그 일이 꿈이 아니라고 되새겨주듯 잔인하도록 선명합니다.
몸과 바닥에 낭자한 핏자국, 너덜너덜한 옷,
박문대가 급하게 응급처치를 하고 간 듯 큰 상처는 치료된 몸.
이제 난 뭘 어떻게 해야하지, 그런 탈력감에 사로잡힐 때 쯤,
바로 옆 바닥에 포스트잇이 하나 붙어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급하게 휘갈겨 쓴 듯, 군데군데 핏자국과 젖은 흔적이 가득한.
미안해. 내 집에 네가 알아야 하는 모든 게 있어. 밤에 봐.
...
여기까지 무슨 정신으로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포스트잇을 보자마자 당신은 정신 없이 이곳으로 달려왔습니다.
마치 아무도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 듯 황량한 거리.
이번에도 집 문은 잠겨있지 않습니다.
안으로 들어서자 선명하게 핏물이 말라붙어 있는 발자국이 점점이 이어집니다.
발자국은 부엌을 제외한 집안 모든 곳으로 이어집니다.

어제 치운 것이 무색할 정도로 어지러이 흐트러져 있는 방입니다.

각 메모장들의 표지에 적혀있는 숫자를 발견합니다.
8월 12일, 8월 13일......
펼쳐보면 각 날짜에 해당하는 기록들이 빼곡히 적혀있습니다.
자신이 오늘 뭘 했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까지도 세세하게.
그리고 이건... 당신이 이전에 봤던 그 메모장입니다.
'그것'이 가장 큰 걸림돌로 여기는 것은 신재현이고, 지구의 멸망이 다가왔다. 그러니 더는 무력하게 있을 수만은 없다. 그 날에 전부, 끝을 낼 것.

| 기준치: | 75/37/15 |
| 굴림: | 57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페이지마다 굵게, 몇 번이고 덧칠된 똑같은 문장이 쓰여 있습니다.
제발 더는 나를 빼앗아가지 마.
...더 이상 메모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 건 없는 모양입니다.

최근에 산 듯 깨끗한 책꽂이입니다.
안에는 책은 하나도 없고, 신문 기사를 스크랩한 것들만 잔뜩 꽂혀 있습니다.
[의문의 연쇄 살인 사건] , [정재계 인사들에 대한 살인마의 학살] ......
최근 화자되는 연쇄 살인 사건에 대한 신문들 뿐입니다.

| 기준치: | 75/37/15 |
| 굴림: | 51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핸드아웃 제공.
스크랩된 기사 속 문장 여기저기에 가로줄이 그어진 채 그의 글씨가 덧붙여져 있습니다.

더 이상 조사 가능한 곳은 없는 모양입니다.
화장실로 갈까요?

달칵, 화장실의 불을 키자 별로 깔끔하지 않은 풍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바로 어제의 흔적인 듯 굳은 핏자국들이 여기저기 묻어 있습니다.

| 기준치: | 75/37/15 |
| 굴림: | 100 |
| 판정결과: | 대실패 |
(상처 부위가 아프네...)
음... 그냥 화장실이네요!
피비린내가 조금 나긴 하지만, 제법 깨끗합니다.
왠지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나가도록 하죠.

거실의 소파 위에 피 묻은 비디오 테이프가 하나 놓여 있습니다.
큰 TV에 넣어 재생시켜볼 수 있을 만한 크기입니다.

소파 맞은 편에 커다란 TV가 있네요.
넣어볼 수 있겠습니다.

비디오 테이프를 넣자 몇 번 지직거리더니,
곧 화면에 어제와 똑같은 모습을 한 채 입술을 꾹 깨물며 손을 모아쥐고 있는 박문대가 들어찹니다.
촬영한 시간은 이른 아침인 듯, 닫혀진 커튼 사이로 밝은 햇빛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밤이,
......밤이 너무 무서워. 어김없이 밤은 오고, 세상이 어두워지면 나는 또 누군가를 죽이러 가.
화면 속의 그가 꺼낸 말은, 당신이 줄곧 생각하던 것에 대한 확인 사살이었습니다.
박문대가 세상을 공포로 몰아넣은 그 연쇄 살인범이며,
그는 바로 어제, 정말로 당신을 죽이려 했다는 것에 대한, 조준 사격.

| 기준치: | 54/27/10 |
| 굴림: | 75 |
| 판정결과: | 실패 |
4
청려, 이성 4 감소.

애초에 시스템과 관련된 이야기였으면 가장 먼저 너한테 알렸겠지. 하지만, 그것도 아닐 뿐더러 살인이 관련된 이상 너를, 끌어들일 순 없었어.
‘그것’의 정체는 나도 몰라. 단지 또 다른 괴생물체를 이 세상에 불러들여 지구의 지배, 나아가 멸망을 계획하고 있는 것 같다 라는 점만 알아챘지. 시스템과 같이, 나를 숙주로 삼아서.
‘그것’의 계획에 방해되는 고위층 간부들들 주로 죽인 것 같은데. …그 중에 너도 포함되어 있다. 아마 내 몸을 지배하면서 너를 방해꾼으로 인식하게 된 거겠지. 그걸 알 게 된 건 나도 오래되지 않았어. 그래서 피했던 거다.
‘밤’이 아니면 나는 박문대야. 네가 기억하는, 류건우의 기억을 가진 내가 맞아. 하지만 어제 네가 본 나는 ‘내’가 아냐.
......너무 늦게 깨달았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고.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고, 내 미래도 더는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걸.
내 이기심 때문에 너를 위험하게 만들었어.
...이미 멤버들에게도 넌지시 말해뒀다. 회사에도.
‘박문대’에게 미래는 없어.

우리, 오늘 밤에 이별을 고하자.
안녕, 다시는 만나지 말자, 하고.
괴물이 된 나를, 죽이러 와 줘.
기다리고 있을게.
나를...... 구해줘.
그 믿을 수 없는 부탁을 끝으로 비디오가 꺼지고, 화면은 검게 물듭니다.
무슨 소릴 들은 건지, 사고가 제대로 돌아가질 않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별무리가 흩어질 밤에 박문대 자신도 흩어질 생각이라는 것.
그리고, 그런 그를 당신의 손으로 흩어내버려야 한다는 것.
그가 당신에게 부탁한 것은 다름아닌 스스로의 죽음임을.

| 기준치: | 50/25/10 |
| 굴림: | 42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1
자동으로 TV 채널로 전환된 화면에서는 연신
오늘 쏟아져내릴 아름다운 유성우에 대한 보도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금일 화려하게 쏟아질 유성우는 저녁 8시부터 새벽 2시까지 장관을 이룰 것으로 예상되어, 많은 인파가 몰리고 있는 중이며... ...」
그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별의 죽음이 수놓아질 하늘 아래에서 너는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내 손에 흩어지기 위해?
...
현재 시간은 오후 6시.
예약을 잡아놓은 전망대까지는 1시간 정도가 걸리니,
도착하면 밤이 되기 전까지나마 그와 짧은 대화라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를... ... 구해줘.'
당신은 결정해야 합니다.
구원과 죽음이 동의어가 되어버린 그에게, 무엇을 건네어줄지.

그에게로 가는 길이 이렇게나 두렵고, 괴롭고, 비참한 일이던가요.
앞으로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너무나도 무겁습니다.
도착한 그 곳, 유성우가 아름답게 쏟아져내릴 그 곳,
그가 별과 함께 무너져내리기를 바란 그 곳에서,
당신은 고개를 들어 저녁 노을이 지는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그도 당신과 같은 하늘을 보고 있을까요.
당신과 같은 것을 눈에 담고,
같은 불안을 품에 안고,
같은 고통을 느끼고 있을까요.
...
...시간이 없습니다.
당신은 마저 걸어가, 그와 약속했던 장소,
별이 가장 잘 보일 높은 전망대로 올라갑니다.
올라가면 보이는 것은, 벤치에 기대어 앉아 당신을 기다리고 있던 박문대.
한 손에는 하얀 약통을 들고 있습니다.


...미안. 너한테 맡겨버려서.








이득고 나를 원망하려나. 사람을 죽였다는 감정에 휩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구원이라는 단어 자체에 차라리 목매였으면 좋겠다. 내가 가장 원하는 건 나를 위한 구원이 아니라. 너를 살리기 위한 구원이라는 것을 영원히 모른 척한다 하여도. 이 순간에 네 삶을 묻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서.) 내가 네게 가지는 죄책감은 정당하지. 내가 네게 얼마나 되는 존재일진 모르겠다만. ...살인은 쉽지 않으니까. 이 행위의 이유도, 결과도 다 네게 쏟아붓고 너는 눈을 돌리면 돼. 내가 네게 요구하는 건 고통이 아니야. ...그렇다면 다행이고. 너는 똑같이 행동할 테고, 나도 똑같이 네게서 달아날 테지. 네가 영원한 별이 되었는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영원한, 하나밖에 없는 별이다. 내가 죽어서도 기억할 별은 너야. 나를 죽이는 것에도 후회를 가지지 마, 신재현. 내가 네게 강요한 것이야. 너는 그저 나를 따라준 거고. 이게 내가 마지막으로 감당할 수 있는 최선이니까.
그는 대화하는 내내 붙잡고 있던 흰 약통의 뚜껑을 엽니다.

신재현. 이걸 먹고 내가 잠들면, 내가 부탁한대로 해줘.
반드시 그래야 해. 만약 내가 다시 눈을 뜬다면......
그건 내가 아닐 테니까.
곧, 입 안에 약을 털어넣은 그가 짧게 웃어보이고는, 당신에게로 쓰러집니다.
당신은 약을 먹고 쓰러진 박문대를 받아듭니다.
자, 신재현. 이제 시간이 없어요.
그가 깨어나기 전에
당신의 손으로 그를 죽여야합니다.
남겨질 날을 두려워하지 말아야합니다.
그와의 추억이 헛되지 않도록
박문대를 기억하기 위해서요.

슬며시 손 끝을 맥 위에 올려봅니다. 규칙적으로 울리는 박동 소리엔, 어떠한 만약도 존재하지 않음을 알고 있습니다. 가볍게 당신의 목 위에 제 손을 전부 덮어내고서는 서서히 힘을 주어, 목을 압박합니다. 어떠한 시점에 자신 또한 겪어봤던 죽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 있음은... 달가울 수 없는 감정입니다. 그럼에도 힘을 뺄 수는 없습니다. 완벽하게 숨이 끊어질 때까지. 다른 존재가 박문대를 잠식시키기 전에. 우리는 이렇게 끝을 내야함을 알고 있습니다.)
잠들었음에도 괴로운 듯이 몸부림을 칩니다.
하지만 당신은 손에서 힘을 빼지 않죠.
점점 빨라지는 맥박이, 아직 그가 살아있음을 알려줍니다.
그의 마지막을 지켜보려 눈도 돌리지 못한 채로
당신은 끝을 맺습니다.
당신의 손끝에서, 간헐적으로 이어지던 그의 숨이 완전히 끊긴 순간,
당신 안의 무언가도 끊겨버린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제 정말로,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된 그의 얼굴을 보며,
다시는 채울 수 없게 된 빈 공간을 느끼며,
당신은 유성우가 찬란히 쏟아져내리기 시작한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그 날,
그 밤에,
눈이 멀어버릴 만큼 찬란했던 유성우는
오로지 당신만이 아는 한 편의 위령제가 되었습니다.
쏟아지던 별무리와 함께 흩어져버린 그의 죽음을 위로하는 빗물이 되어버렸습니다.
당신이 그에게 건네어준 것은 과연 구원이었는지.
별이 된 수많은 죽음들 중 하나에 네가 있을지.
별무리가 흩어지는 밤에,
...
수몰버스
...
…
덜컹.
몸이 얕게 흔들리는 감각과 함께 불현듯 꺼져있던 정신이 맞붙습니다.
아무래도 버스 안에서 깜빡 잠들어버렸던 모양이에요.
눈을 뜨면 들어오는 풍경은 익숙하고도 평범한 버스의 내부.
흔들리는 손잡이,
끊임없이 스쳐 지나가는 차창 너머의 풍경,
조금 낡은 감이 있는 앞 좌석의 시트….
익숙한 것투성이인 차체의 내부에서 익숙하지 않은 점이라고는
버스가 텅 비어있다는 점뿐입니다.
그야말로 나 자신을 제외한 탑승객이 존재하지 않습니다만, 왜일까요.

별로 대수롭지는 않습니다.
적적한 버스를 오로지 시선만으로 훑고 있었을 때였나요.
문득 좌석의 맞은편 정면에 붙어있는 버스 번호 라벨이 눈에 들어옵니다.

| 기준치: | 75/37/15 |
| 굴림: | 78 |
| 판정결과: | 실패 |
음...
자닥 깨서 그런 걸까요?
나도 덜깬듯
눈을 비비고 다시 한 번 더 라벨을 살피면...
1215번.
이 버스는 아무래도 종점까지 우회해서 가는 번호의 버스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 탑승객이 없을 법도 하지요.
불안할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어디쯤 왔지?

그 전에 목적지가 어디였더라….
몽롱한 정신을 가다듬다 보면 문득 기대고 있던 차창 너머로 시선이 돌아갑니다.
흔들리는 창문 너머로 어느새 장대비가 쏟아져 내리고 있습니다.
이 비는 언제부터 내리기 시작한 걸까요?
잠들기 전까지만 해도 날씨가 제법 맑았던 것 같은데…

| 기준치: | 80/40/16 |
| 굴림: | 71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잠들기 전까지만 해도?
글쎄요, 정말 잠들기 전까지만 해도 날 씨가 맑았던가요?
당신은 문득 부자연스러운 위화감에 사로잡힙니다.
언제 이 버스에 올라타 있었는지조차 떠오르지 않습니다.
마치 검은 도화지 위에 먹칠한 듯,
머릿속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뿌옇고 흐릿한 기억만이 잔존합니다.

| 기준치: | 55/27/11 |
| 굴림: | 88 |
| 판정결과: | 실패 |
이성 1 차감합니다.
덜컹.
어지러운 머리를 갈무리하기도 전에,
방지턱 탓인지 버스가 또 한 번 크게 흔들립니다.
그 불친절한 진동과 함께 품에 안고 있던 무언가가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당신이 떨어진 무언가를 눈으로 쫓으면
버스 바닥을 나뒹구는 국화꽃다발을 발견합니다.
품에 안고 있던 무언가는 아무래도 국화꽃다발이었던 것 같습니다.
바닥에 떨어 져 나뒹군 충격 탓이었을까요?
순백색의 꽃잎 몇 송이가 바닥에 흐드러진 것이 보입니다.


| 기준치: | 70/35/14 |
| 굴림: | 25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바닥에 나뒹구는 꽃다발을 주워들던 그 순간,
단말마와 같은 이 명이 짤막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갑니다.
마치 틴벨과 같은 소리였습니다.
아, 그제야 흐릿한 의식 너머로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그렇지.
오늘은 친애하는 박문대의 첫 번째 기일이었죠.
그러니 당신의 박문대가 잠들어있는 납골당으로 향하는 길이었을 겁니다.
아무리 피곤해도 그렇지,
이런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니.
당신답지 않네요.
거기까지 떠올리면 문득 버스는 인적이 드문 정류장에 정차합니다.
탑승구가 열리고, 올라타는 승객의 모습에
당신은 스스로의 눈을 의심하게 됩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야 버스 위에 올라탄 사람은,
…1년 전 죽었던 박문대였으니까요.
고즈넉한 빗소리가 귀를 먹먹히 울리는 텅 빈 버스 안,
죽었던 박문대와 조우하게 된 당신,

| 기준치: | 54/27/10 |
| 굴림: | 69 |
| 판정결과: | 실패 |
2
(설마... 꿈이라도 꾸는 건가. 눈 앞에 비치는 당신의 모습에 당황스러운 눈으로 바라봅니다.)
맞붙고, 멎습니다.
맞붙는 것은 허공 위로 겹쳐진 두 사람의 시선.
일순 멎는 것은 당신의 호흡.
그뿐입니다.
탐사자는 알고 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은 때로 꿈보다 비현실적이라는 사실을요.
그렇기에 지금껏 비현실적인 현실을 여러 차례 맞이해가며
이토록 불친절하고 잔인한 삶을 살아오지 않았던가요.
비현실적인 현실이요.
박문대는 분명 1년 전에 죽었습니다.
오늘처럼 비가 내리던 날, 돌이킬 수 없는 사고에 휘말려서요.
그래요. 나는 그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던 순간 곁에 있어 주지 못했고,
그렇기에 그의 부재를 부정했던 기억을 떠올립니다.
그러니 내 앞에 서 있는 저 사람은,
박문대가 아닌 박문대를 지나치게 닮은 사람일 겁니다.
꿈보다 비현실적인 현실의 나날 속에서도
실현될 수 없는 비현실이 있는 법입니다.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 돌아올 수는 없잖아요.
혼란 속에 빠져있는 당신의 상태를 눈치챈 걸까요.
막 버스에 올라탄 박문대를 닮은 이는
당신의 생각을 부정하듯 옅은 미소를 지으며
당연하게도 당신이 앉아있는 좌석 옆에 앉습니다.

저 웃는 얼굴.
저 목소리.
나를 향하는 두 눈동자.
아무리 부정 하고 잊으려 애를 써도 잊히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리웠고, 그리웠기에
나날이 새로운 처절함과 아픔을 느끼게 했었던 저 두 눈처럼요.
정차했던 버스는 오로지 두 사람만을 태운 채,
다시금 천천히 움직이기 시 작합니다.
그 순간 탐사자는 받아들이고 맙니다.
박문대를 닮은 이는,
그저 닮은 사람일 뿐이 아닌 박문대 그 자체라는 사실을요.
당황했나요?
아니면 반가운가요?
혹은 슬픈가요.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의 덩어리가 가슴속에 응어리로 자리 잡습니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갈피조차 잡히지 않습니다.
혹여나 꿈에서라도 다시 만날까 준비해 두었던 말이 한가득 쌓여 있었는데도 말이에요.
박문대는 여전히 혼란스러워하는 당신과 눈을 마주합니다.


당신의 대답에 그는 군더더기 없는 애정과 슬픔이 가득 담긴 눈으로 이쪽을 응시할 뿐입니다.
덜컹.
다시 한번 방지턱을 밟고 지나간 버스가 얕게 흔들립니다.

| 기준치: | 75/37/15 |
| 굴림: | 15 |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얕은 진동 탓에 시야가 갈라짐과 동시에,
문득 운전석 쪽으로 시선이 꽂힙니다.
…이상합니다.
운전석에서 운전대를 잡고 있어야 할 버스 기사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 버스는 그저 운전사도 없이 홀로 비가 내리는 도로를 내달리고 있습니다.

| 기준치: | 54/27/10 |
| 굴림: | 5 |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이성 차감 없습니다.
박문대 쪽을 돌아보면, 그는 일절 놀란 기색이 없습니다.
오히려 평온해 보이는 얼굴로,

하고 말을 걸어옵니다.




문득 박문대가 버스의 벨을 누릅니다.

혼자 보내면 너는 길을 잃어버릴 테니까,
네가 가야 할 목적지까지 내가 바래다줄 거야.

그 말을 끝으로 버스는 첫 번째 정류장에 정차합니다.
버스에서 내린 두 사람은 협소한 간이정류장 지붕 아래로 들어섭니다.
빗줄기는 여전히 이 세상을 침수시킬 것만 같이 맹렬합니다.
투명한 플라스틱으로 처리된 정류장 지붕 아래,
양옆으로 담장 형식의 벽면이 기둥처럼 세워져 있고
그 중앙에 원목으로 만들어진 나무 벤치가 하나 놓여있습니다.
버스 그림이 새겨진 표지판 또한 눈에 띕니다.

마치 담장을 연상시키는 정류장의 벽면에는
흰색 장미 무더기가 덩굴을 내리고 자리합니다.

| 기준치: | 75/37/15 |
| 굴림: | 68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벽면 그 아래 피어난 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아래 피어있는 것은… 흰색의 국화.
탐사자가 들고 있는 것과 같은 흰색 국화꽃입니다.
흙 속에 뿌리를 내린 채 한들한들 흔들리는 국화꽃은
물기를 머금은 탓에 아주 생생합니다.
국화꽃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쏟아져 내리는 빗소리를 가르고 그가 말을 걸어옵니다.

빗줄기에 파묻힌 탓이었을까요.
그렇게 속삭이는 박문대의 목소리는 어쩐지 막연하고도 얕습니다.

| 기준치: | 80/40/16 |
| 굴림: | 7 |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국화꽃의 꽃말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국화꽃의 꽃말은 분명 감사함과 진실함 이었죠.

비를 바라보고 있던 박문대가 벤치로 당신을 힐긋 보더니
문득 내뱉습니다.

그럼 국화꽃의 색에 따라 꽃말이 다른 것도 모르겠네. 너는
그렇게 중얼거리는 박문대를 뒤로 하고 당신은 벤치를 확인합니다.
원목으로 만들어진 평범한 나무 벤치입니다.
지붕이 하늘에서 쏟아지는 빗물을 막아주는 탓에 젖은 부분 없이 바짝 말라 있습니다.
버스가 도착할 때까지 벤치에 앉아 쉬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박문대는 당신 옆에 있는 벤치에 걸터앉습니다.
1년만에 봐서 그런 걸까요.
당신이 알고 있던 박문대와는 다른 느낌이 들어요.
무언가...

| 기준치: | 75/37/15 |
| 굴림: | 91 |
| 판정결과: | 실패 |
음 역시 잘 모르겠어요.
그냥 너무 오랜만에 본 탓이겠죠.
죽은 그가 달라졌을리 있겠어요?

간략한 버스 그림이 새겨진 정류장 표지판입니다.
표지판 아래 버스 노선도가 붙어있습니다.
당신이 노선도를 확인하면…
평범한 노선도가 아니네요.
아니, 이를 노선도라고 칭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버스 노선을 알리는 안내판에는 노선도 대신
색상에 따른 국화꽃의 꽃말에 관한 내용이 적혀있습니다.
핸드아웃 제공.
맨 아래 적혀있는 국화꽃의 색상과 색상별 의미는 칠이 벗겨져 있어 읽을 수 없습니다.


| 기준치: | 75/37/15 |
| 굴림: | 39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벽면 상단에 고정되어있는 버스 도착 안내 전광판을 발견합니다.
여느 버스 정류장에서도 볼 수 있을 법한 평범한 전광판입니다.
전광판에는 글자가 흐르고 있지만,
약한 노이즈가 끼어있는 탓에 글자를 제대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글씨를 읽나요 신재현?

당신은 글자가 깨진 안내 메시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전광판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기준치: | 80/40/16 |
| 굴림: | 18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탐사자는 막연히 떠올립니다.
하는 실없는 생각을요.


왜, 였을까요.
나지막이 당신의 이름을 마주 부르는 그의 목소리는 어딘가 한 구석,
차게 식은 빗물에 젖어 번지는 것만 같습니다.
당장이라도 물에 녹아 사라질 것만 같아요.
신재현, 당신은, 당신을 바라보는…
한없이 가라앉은 것만 같은 그의 두 눈동자에서 무엇을 읽어냈나요.

| 기준치: | 75/37/15 |
| 굴림: | 91 |
| 판정결과: | 실패 |

| 기준치: | 80/40/16 |
| 굴림: | 47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그러고 보니, 그의 입술 바깥으로 터져 나온 나의 이름은 이번이 최초이지 않았던가요.
그는 버스에서 조우한 이래로 단 한 번도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으니까요.
무어라고 말을 건네기도 전에 장대비의 포화를 가르고 라이트가 번쩍입니다.
곧 버스 한 대가 정류장 앞에 정차합니다.
버스의 전면 유리창에 붙어있는 라벨에는
1127번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습니다.
박문대가 벤치에서 일어섭니다.


두 사람이 버스로 올라 타면,

| 기준치: | 70/35/14 |
| 굴림: | 19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삐―.
아까 전 들었던, 단말마와 같은 이명이 귓가를 울리고 사라집니다.
두 사람이 올라타는 것과 동시에 버스는 천천히 빗길 속을 뚫고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버스는 첫 번째 버스와 마찬가지로 텅 비어있습니다.
이 안에 존재하는 탑승객은 오로지 당신과 박문대, 두 사람뿐입니다.
운전석을 살피면 첫 번째 버스와 마찬가지로 기사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버스는 그저 운전기사 없이 홀로 굴러갈 뿐입니다.
두 사람은 의자 두 개가 붙어있는 2인용 좌석에 착석합니다.

| 기준치: | 75/37/15 |
| 굴림: | 91 |
| 판정결과: | 실패 |
음...
창 밖은 비로 인해서 뿌옇게 변해있을 뿐입니다.
당신의 옆에 앉은 박문대가 고개를 까딱이며 당신을 쳐다보네요.





그와 짧은 이야기를 이어나가던 와중,
문득 한 가지 기억이 떠오릅니다.
날짜를 특정할 수 없는 그 언젠가의 평범하고 행복했던 기억.
당신의 앞에는 박문대가 자리하고,
우리는 조용하고도 한적한 밤하늘 아래에 함께 있었죠.
왜, 하늘에선 비가 내리고 있는데
그토록 맑은 밤하늘을 떠올리는 걸까요.
별이 한가득 쏟아내릴 것만 같은 밤하늘을.
상기해낸 평화로움도 잠시, 당신은 갑작스러운 서늘함을 느끼게 됩니다.
글쎄, 서늘함이라는 말로 형용할 수 있을까요.
모든 불안정한 감정이 한 데 뭉쳐 숨통을 억세게 짓누르 던 그때.
빗길에 미끄러진 버스가 요동치듯 크게 흔들립니다.
무언가에 머리를 강하게 맞는 충격이 입니다만,
좌석을 짚은 당신과 다르게 옆에 있는 누군가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집니다.
와락.
고꾸라지는 몸을 지탱하듯 누군가를 당신이 강한 힘으로 끌어안습니다.
아니, 누군가라고 특정 지을 필요도 없잖아요.
그야 지금 당신의 곁에 존재하는 사람은 한 명뿐인걸요.
박문대입니다.
당신이 억센 힘으로 박문대를 끌어안고 있습니다.
어째서?
그런 의문을 던지기도 전,
쾅―!!
반대편 차선을 지나치던 트럭과 버스가 갑작스레 충돌합니다.
직후 들려오는 것은 커다란 굉음.
쇠가 굽어들고 절단되는 듯한 소름 끼치는 금속음.
무언가 터지는 소리,
날아가는 소리,
어딘가에 들이박는 듯한 충격.
온몸의 뼈가 부러지고, 근육이 찢겨 나가는 듯한 생생한 통증.
품에 안고 있던 국화꽃다발이 바닥을 나뒹굴고,
마치 눈송이 같은 국화 꽃잎은 온 시야를 긋고 흐드러집니다.
꽉 끌어안은 박문대의 체온은 어쩐지
그게 또 어쩐지 너무나도 슬퍼서…….
괜찮냐고 물어봐야 하는데,
이대로 정신을 잃으면 안 되는데.
야속하게도 박문대의 상태를 확인하기도 전에 시야가 수몰되고 맙니다.
칠흑 같은 어둠이 눈앞에 왈칵 쏟아집니다.
왜인지 생경하지 않은 순간입니다.

| 기준치: | 70/35/14 |
| 굴림: | 46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삐―.
의식과 함께 낙하하는 머릿속에 이명이 들려옵니다.
그러나 이제 와서 그런 이명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어지러운 의식을 잠재우듯 귓가에 익숙하고도 다정한 목소리가 섞여들던 탓입니다.
"괜찮아."
…하고.
…깜빡.
탐사자는 눈을 뜹니다.
제일 먼저 들려오는 것은 무겁게 낙수하는 물방울 소리.
그리고,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품 안에 안겨있는 백색의 국화 꽃다발입니다.
꽃다발은 아까 전 보았을 때보다 조금 더 시들어있습니다.
이렇게 시들면 안 될 텐데.
당신은 막연한 슬픔을 느낍니다.
그야 오늘을 위해 준비한 꽃다발인걸요.

꼭 빗물에 익사할 것만 같이 무겁던 정신을 흔드는 것은
잔잔하고도 담담한 박문대의 목소리.
이곳은 버스 정류장인 것 같습니다.
꼭 이 세상과 동떨어진 것만 같이,
끊임없이 펼쳐진 도로 한가운데 마련된 간이 정류장입니다.
어느 틈에 하차한 걸까요. 두 사람은 벤치에 앉아있습니다.
박문대에게 기댄 채 잠들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까 전의 사고는 역시 꿈이었던 걸까요?

| 기준치: | 54/27/10 |
| 굴림: | 18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이렇게나 생생한데 말이죠.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멀쩡할 수가 없을 테니,
아무래도 질 나쁜 꿈이라도 꾼 모양입니다.
이성 1 차감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박문대의 목소리는 어딘지 모르게 지쳐있는 것만 같다는…
이유 모를 생각이 듭니다.

| 기준치: | 75/37/15 |
| 굴림: | 36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첫 번째 정류장과 마찬가지로
벽면 상단에 고정되어있는 버스 도착 안내 전광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느 버스 정류장에서도 볼 수 있을 법한 평범한 전광판입니다.
전광판에는 글자가 흐르고 있습니다.
노이즈가 끼어있는 탓에 글자를 제대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만,
첫 번째 정류장에서 보았던 전광판에 비해 노이즈가 덜합니다.
당신은 첫 번째 정류장에서 박문대의 이름을 호명한 직후 버스가 도착했던 것을 떠올립니다.
두 번째 정류장에서도 박문대의 이름을 불러야 버스가 도착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기준치: | 80/40/16 |
| 굴림: | 86 |
| 판정결과: | 실패 |
버스 사고의 충격 탓이었을까요?
어쩐지 께름칙한 기분이 듭니다.


신재현.
무겁게 허공을 가르는 그의 목소리는,
어째서 이만큼이나 빗물에 수몰될 듯 참담히 젖어있는지.
그가 당신의 이름을 호명하고
얼마 있지 않아 세 번째 버스가 저 멀리서 빗속을 헤치고 다가와 정차합니다.
버스는 지금까지 승차했던 버스와 달리 커다란 2층 버스입니다.
아, 실은 누가 상대를 호명하든 상관없었던 걸까요.
그래요. 달리 상관이 없었던 겁니다.
두 사람 앞에 멈춰선 버스의 탑승구가 입을 벌립니다.
타고 싶지 않아요.
타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그저 그래서는 안 될 것만 같다는 근원 모를 충동만이 내 안에 가득합니다.




괜찮다. 내가 있으니까. 타도 돼.





그 이유 모를 낯선 충동은 빗물보다도 잘게 흐드러져 떨어지는 박문대의 목소리에 흔적도 없이 녹아 사라집니다.
아까까지만 해도 숨통을 조르고 익사시킬 듯 나를 쥐고 흔들었던 불안감마저도
깨끗이 씻겨 내려가는 듯합니다.
그저 온 세상을 적시는 빗소리와 끝없는 안정감만이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합니다.
박문대가 당신에게 손을 내밉니다.
당신이 그 손을 잡으면, 두 사람은 세 번째 버스에 올라탑니다.
버스의 전면 유리창에 붙어있는 라벨에는 0831번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습니다.

| 기준치: | 70/35/14 |
| 굴림: | 61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삐―.
아까 전 들었던,
이제는 익숙해진 단말마와 같은 이명이 귓가를 울리고 사라집니다.
두 사람이 올라타는 것과 동시에 버스가 움직입니다.
차창 바깥으로 온통 습기뿐인 세계가 스쳐 지나갑니다.
버스는 지금까지의 버스와 마찬 가지로 텅 비어있으며,
기사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안에 존재하는 탑승객은 그저 당신과 박문대, 두 사람뿐입니다.
버스 내부에는 2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보이지만, 입구가 닫혀있습니다.
닫혀있는 입구의 문에는 커다란 자물쇠가 걸려있는 것이 보입니다.

| 기준치: | 75/37/15 |
| 굴림: | 88 |
| 판정결과: | 실패 |
(닫혀있는 입구 문을 잠시 보다, 국화꽃을 바라봅니다.)
당신은 품에 안고 있던 국화가 일전보다 훨씬 더 생기를 잃었음을 눈치챕니다.
갓 생명을 피워낸 듯 하얗고 투명하던 꽃잎은,
이제 그저 계절을 잃은 이름 모를 들꽃처럼 보여요.
단지 몇 송이의 국화만이 처량히 바래진 꽃잎의 색을 발할 뿐입니다.
박문대가 먼저 창가 좌석에 앉습니다.
세 번째 버스에 탑승한 뒤로 그는 어쩐지 멍한 상태를 유지하며,
지친 듯, 혹은 침체되어 있는 듯 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말을 걸어볼까요?




어쩐지 나사가 빠진 듯한 모습입니다.





| 기준치: | 75/37/15 |
| 굴림: | 5 |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좌석 바닥에 떨어져 있는 책 을 한 권 발견합니다.
책을 들어 확인해보면...
책이라기보다는 얇은 책자에 가까워 보입니다.
푸른색의 표지에는 아기자기한 회전목마 그림이 프린트되어 있습니다.
놀이공원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화려하고도 쓸쓸한 푸른 대낮의 회전목마네요.
제목은 merry go round
…메리 고 라운드.
회전목마를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핸드아웃 제공.
책자의 내용을 살핀 직후,
탐사자는 강한 현기증과 함께 정신을 잃습니다.
빛도 한줄기 들지 않는 맨 밑바닥의 어둠 속에서,
탐사자는 환각을 마주합니다.
환각 속에 삶에서 가장 기뻤던 순간이,
가장 슬펐던 순간이,
죽어서도 잊지 못하리라 여겼던 반짝이던 삶의 조각이,
어느 순간 그 삶에 뿌리를 내리고 침범한 박문대와의 첫 만남이.
…단 한 가지도 빼놓을 수 없는 여러 기억이 스쳐 지나갑니다.
처음 그와 만났던 기억,
그에게 크게 뒤통수를 맞았던 기억,
콩이와 다시 만났던 기억,
그와 손을 잡고,
등을 맞대고,
함께 노래를 불렀던 기억,
처음으로 패배를 받아들었던 기억,
그럼에도 고조되는 행복감에 웃어버렸던 순간.
한동안 빠른 속도로 영상이 스쳐 지나가고 잠시간 필름이 뚝 끊기며 말간 어둠이 지속됩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문득, 다시금 빛처럼 터져 나오는 영상이 하나.
두 사람의 모습입니다.
당신은 벤치에 기대어 앉아있는 누군가를 쳐다보고 있습니다.
당신은 잠든 누군가의 목을 움켜쥐고
서서히 압박하기 시작합니다
의식을 잃은 그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하나도 빠짐 없이 눈에 담으면서
그 고통을 잊지 않기 위해서
세상에서 사라질 그를 잊지 않기 위해서.
당신이 손을 떼어냈을 땐,
떨리던 숨은 끊어져있었습니다.
왜 잊고 있었을까요.
...미안. 너한테 맡겨버려서.
벤치에 기대어 힘 없는 목소리로 말하던 그 사람을.
너는 청려로, 신재현으로 살아갈 거잖아.
남겨졌다고 생각하지 마라. 나는 항상 너희를 쫓을 거니까.
적어도 내게는... 영원한, 하나밖에 없는 별이다.
내가 죽어서도 기억할 별은 너야.
죽음 앞에서도 한치 떨림 없는 목소리를.
그 안에 새겨진 죄책감을.
당신의 곁에 사시사철 피어나는 국화처럼 존재하던 사람은 누구인가요.
늘 남을 위해 자신을 아끼지 않았으며,
온 생애를 다해 세상을 열렬히 사랑하던 사람은 누구인가요.
당신이 그토록 눈으로 쫓았던 사람은 누구인가요.
그야…
박문대잖아요.
박문대입니다.
별이 된 수많은 죽음들 중 하나에,
박문대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신재현.
우리, 오늘 밤에 이별을 고하자.
안녕, 다시는 만나지 말자, 하고.
괴물이 된 나를, 죽이러 와 줘.
기다리고 있을게.
나를...... 구해줘.
당신에게서 죽음이 아닌 구원을 받은 것은,
다름 아닌 박문대였습니다.
당신이 박문대의 마지막을 지켜내고,
트렁크에 박문대의 시체를 넣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습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어두운 밤, 조용한 차 안에는 당신 밖에 없습니다.
쾅―!!
반대편 차선을 지나치던 트럭과 당신의 자차가 갑작스레 충돌합니다.
직후 들려오는 것은 커다란 굉음.
쇠가 굽어들고 절단되는 듯한 소름 끼치는 금속음.
무언가 터지는 소리,
날아가는 소리,
어딘가에 들이박는 듯한 충격.
온몸의 뼈가 부러지고, 근육이 찢겨나가는 듯한 생생한 통증.
쉼 없이 흔들리고 요동치는 어두운 화면 사이로 무언가가 시쳐 지나갑니다.
암전하는 차의 내부를 어둡게 띄우며 필름이 또 한 차례 뚝 끊겨나갑니다.
떠오르는 영상의 날짜는… 1년 전의 오늘입니다.
아, 그제야 지금까지 서리가 내린 듯 희뿌옇기만 하던 기억 하나가
마치 퍼즐 조각처럼 달라붙습니다.
1년 전의 사고가 떠오릅니다.
1년 전, 돌이킬 수 없는 사고의 현장에 존재하던 것은 당신만이었습니다.
당연하죠.
악몽과 똑같을 수는 없어요.
당신과 그는 함께 있을 수 없었어요.
그는 당신을 지키지 못했어요.
당신의 손으로 부숴버렸으니까요.
이건… 주마등인가요?
인생의 주마등 속에서 사고의 진상을 목격한 탐사자,

| 기준치: | 53/26/10 |
| 굴림: | 81 |
| 판정결과: | 실패 |
4
일순 강한 충격과 함께 주마등이 돌아가던 공간이 산산이 부서져 내립니다.

| 기준치: | 70/35/14 |
| 굴림: | 20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삐―――.
무너져 내리는 공간 속에서, 조금은.
길게 이어지는 기계음을 들었던 것도 같습니다.
꼭 말단부위부터 심장까지 강한 전기가 흘렀다 사라지는 것만 같은 감각.
이윽고 모든 것이 바닥까지 묵직하게 가라앉고 맙니다.
끊임없이 퍼붓는 빗소리에 한데 뒤엉켜있던 환각들 또한 함께 수몰됩니다.
귀를 먹먹히 침수시키는 낙수음.
당신은 흔들리는 버스 좌석에 앉은 채 눈을 떠올립니다.
기억났습니다.
떠올렸습니다.
1년 전의 그날, 당신은 박문대가 아니게 될 박문대를 구원했고,
당신은 어쩔 수 없는 사고에 휩쓸려버렸습니다.
그런 사건이 있었음에도 당신만이 살아 돌아왔습니다.
마치 당신을 지키려했던 누군가의 기도처럼요.
고개를 돌리면 박문대는 창가에 머리를 기댄 채 곤히 잠들어있습니다.
깊게 잠들어있는 탓에
이름을 부르거나 흔들어 깨워도 좀처럼 일어나지 않네요.
덜컹.
버스가 방지 턱을 밟고 흔들립니다.
머리가 어지럽습니다.
그에 맞춰, 짤그랑.
무언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미약한 금속음이 들려옵니다.
바닥을 살피면 회전목마 고리가 달린 작은 열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글쎄요...
어딘가에 쓸 수 있지 않을까요?

잠겨있던 2층 문으로 다가갑니다.
닫혀있는 입구의 문에는 커다란 자물쇠가 걸려있는 것이 보입니다.
자물쇠에 아까 얻었던 열쇠를 끼워 넣으면
금속이 맞물려 들어가는 소리와 함께 버스 2층이 개방됩니다.

버스의 2층으로 들어서면,
그 장소는 이상하게도 단출한 방과 같은 형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차창에서
물기를 머금은 탁한 빛이 터져 나와 내부를 은은히 비추고 있습니다.
내부에는 책상과 책장, 그리고 침대 하나가 놓여있네요.

깔끔하게 정돈되어있는 책상 위에는
그 흔한 필기도구도, 책도, 사용감도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 흔한 먼지 하나조차 쌓여있지 않네요.
말끔하다 못해 쓸쓸해 보이는 책상 한가운데 반으로 접혀 있는 쪽지만을 한 장 발견합니다.
쪽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생과 사의 갈림길, 죽음이 머지않은 영혼의 길을 인도하는 사자는
생전 그 사람이 가장 사랑했던 자의 얼굴로 나타나 여로를 안내한다.
이외 볼 것은 없습니다.

책장에는 책이 한가득 꽂혀있지만,
그 어느 것도 당신이 읽을 수 없는 것들뿐입니다.
검은색의 책등만이 마치 밤하늘처럼 빼곡히 즐비합니다.

| 기준치: | 75/37/15 |
| 굴림: | 32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어렵지 않게 책들 사이에 꽂혀있는 쪽지를 한 장 발견할 수 있습니다.
쪽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죽음의 이름은 곧 다음 생으로 향하는 문이 열리기 전까지의 영원한 안식을 의미한다.
그 안식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사자는 산 자의 이름을 세 번 부른다.
세 번의 호명 끝에 산 자는 비로소 망자가 된다.

| 기준치: | 80/40/16 |
| 굴림: | 77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그러고 보니 박문대가 정류장에서 당신의 이름을 불렀었죠.
부른 직후엔 버스가 왔고요.
우연일까요?

꼭 병원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병실용 침대입니다.
다가서면 커튼이 반쯤 쳐져 있습니다.
커튼 위로 핀이 꽂힌 명찰 하나가 매달려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명찰에는 신재현 님이라고 적혀있습니다.
문득 당신은 뼈를 치고 사라지는 기시감에 휩싸입니다.
조금 급한 손길로 커튼을 완전히 걷어내면 드러나는 것은
쓸쓸하기 짝이 없는 병실의 매트리스 침대.
침대 주변으로 즐비한 온갖 의료 장치들…
그 사이에 푸른색 담요를 덮고 누워있는 사람은
입가에 산소마스크를 뒤집어쓴 채 눈을 감고 있습니다.
그제야 탐사자는 형용할 수 없었던 기시감의 정체와 마주합니다.
병상에 누워 끊임없이 즐비한 갖가지 의료 기계들 틈 사이에서,
산소 호흡기를 뒤집어쓴 채 실낱같은 생명을 부지하고 있는 사람은…
신재현, 당신입니다.

| 기준치: | 70/35/14 |
| 굴림: | 27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삐―.
문득 아주 가까운 자리에서 익숙한 기계음이 터져 나옵니 다.

| 기준치: | 75/37/15 |
| 굴림: | 95 |
| 판정결과: | 실패 |
주변을 한 번 둘러볼까요.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병상 옆에 자리하고 있는 심전도 기록 장치를 발견하게 됩니다.
기록 장치의 모니터 위로 마치 미약한 파도 같은 신재현의 심전도 곡선이 출력되어 흐르고 있습니다.
마치 당장이라도 숨이 멎을 것만 같은,
연약하고도 미약한 곡선입니다.

| 기준치: | 80/40/16 |
| 굴림: | 11 |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지금까지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던 수많은 이명,
…아니. 심전도 기록 장치의 기계음을 떠올립니다.
이제야 확신합니다.
당신을 지키려 당신의 손에 죽었던 박문대의 희생이 무색하게,
당신은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버스는 무언가요.
정말 내가 알고 있는 목적지로 향하고 있는 것이 맞습니까.

| 기준치: | 49/24/9 |
| 굴림: | 1 |
| 판정결과: | 대성공 |
?

대...성공 보너스로 이성 차감 없습니다 괜찮습니다...
믿을 수 없는 현실의 연속입니다.
아니, 이제 이건 현실이 아니겠지요.
.
.
.
어쩐지 몸이 강하게 흔들리는 것만 같은 느낌에 눈을 감았다 떠올리면,
흐릿하고 침침한 시야 너머로 희기만 한 천장이 들어옵니다.
삐.
삐.
삐.
벨이 터지는 소리,
장치에서 갈라져 나오는 다급한 기계음 소리,
위급한 환자의 위치를 알리는 병원의 방송 소리,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뭉개지고,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그리고 당신은, 다시 눈을 감습니다.
.
.
.
쏴아아.
고요하고 적막하게 수몰하는 세상을 울리는 빗소리.
낙수하는 빗물은 봄의 끝물에 삶을 모두 피워내고 낙화하는 벚꽃을 닮았습니다.
부드럽게 머리칼을 쓸어주는 손길에 정신을 차리면 어느새 정류장입니다.
품에 안고 있는 국화꽃은 이제 생기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히 시들어 있습니다.

귓가에 내려앉는 다정한 목소리.
박문대에게 기댄 채 잠들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고개를 들어 올리면 아주 자연스럽게도,
정류장의 상단에 자리하고 있는 버스 도착 안내 전광판이 눈에 들어옵니다.
지금까지의 전광판과 다른 점이 있다면 조금의 노이즈도 끼어있지 않다는 것.
그리고… 이제는 온전히 모든 글자를 읽어낼 수 있다는 것.
전광판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래요.
그랬던 겁니다.
이름의 불러야 하는 건 내가 아니라… 박문대였습니다.
당신은 지금까지 박문대가 각 정류장에서 자신의 이름을 호명했던 일을 떠올립니다.
그러고 보면, 꼭 박문대가 자신의 이름을 부른 뒤에 버스가 도착하지 않았던가요.
그야 당연하잖아요.
저 메시지에 따르면… 인도자는 박문대.
인도를 받을 자는, 망자의 길에 들어선 자.
죽음의 여로에서 가장 먼저 버스에 올라타 있던 자.
바로 신재현 당신입니다.
그렇지만 왜일까요.
한참이 흘러도 박문대는 당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이제, 이걸로 마지막일 텐데요.
당신은 첫 번째 버스에서 조우한 직후 지금껏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박문대의 표정을 마주합니다.
그는… 기뻐 보입니다.
동시에 슬퍼 보입니다.
한편으로 어딘지 홀가분해 보이는 눈으로 당신을 봅니다.
박문대는 자리에서 일어나 펼친 우산을 당신에게로 기울입니다.
그의 어깨가 젖어 듭니다.
그제야 그가 입고 있는 옷차림이 눈에 들어옵니다.
까만 정장.
꼭, 세상이 말하는 인도자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우산을 당신에게 기울인 채
처연히 떨어지는 비를 맞던 박문대는 나지막이 입술을 엽니다.
눈물 같은 목소리가 허공을 가릅니다.

그렇게 속삭인 박문대는 문득 당신에게로 손을 내밉니다.
사방은 어느새 컴컴해져 있습니다.

혼자 보내면 너는 길을 잃어버릴 테니까,
목적지까지 내가 바래다줄 거라고 했잖아.
건너편 정류장으로 넘어가자. 네게 꼭 전해야 할 말이 있어.

그는 미동도 없는 당신의 손을 붙잡습니다.
일어나는 모습을 가만 지켜보다, 천천히 건너편 정류장으로 이동합니다.
발끝을 적시는 빗물은 뜨거운지도, 차가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요.
그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야 당연하잖아요.
내가 지금 집중해야 할 존재는 그저 박문대 단 한 사람뿐인걸요.
아주 오래전부터 그래왔던 것처럼요.

점점 죽음에 가까워져 가는 너의 영혼은 삶의 경계를 벗어났어. 그런데, 그건 너무 얄팍한 존재라서. 그런 네 영혼을 노리는 존재가 있었거든. 나는 그런 너의 영혼을 안전한 안식으로 이끌기 위해 신적인 존재와 계약했어.
뭐 그딴 게 있냐고 물어도 시스템보다 낫잖아. 어쨌든 그 계약을 통해 너의 영혼을 안전한 죽음으로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공간과 힘을 얻게 되었고, 그 공간이 지금까지의 버스들이야. 내가 각 정류장에서 한 번씩 너의 이름을 불렀던 건, 너를 죽음으로 인도하기 위함이었어.
하지만... 이제는 네 이름을 더 부르지 않아도 돼. 중간에 우리를 도와준 신이 있어. 다행히 널 다시 삶으로 돌려보낼 수 있게, 자비를 베풀어줬다.
네가 들고 있는 국화는 네 생명 그 자체야.
곧 이 정류장에 너를 현실로 돌려보낼 버스가 도착할 거고.

네가 다시 숨 쉴 수 있게 되는 거야.
박문대가 말을 끝마침과 동시에 두 사람은 건너편 정류장에 도착합니다.
박문대에게서 모든 진상을 듣게 된 당신은 숨이 막혀옵니다.
억만 겁의 슬픔 탓일까요,
아니면… 그렇게 말하는 박문대의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기뻐 보여서였을까요.

| 기준치: | 49/24/9 |
| 굴림: | 48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이성 1 차감합니다.




문득 박문대의 어깨너머로 희미한 불빛이 들어오는 전광판이 보입니다.
전광판의 메시지는 우리가 원래 앉아있던 반대편 정류장의 전광판 메시지와 그 내용이 상이합니다.

내 이름을 불러줘.
그게 내가 너한테 바라는
또 한 번의 구원이자
마지막 바람이다.
이제는 반대입니다.
이제는 반대로 당신이 박문대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신재현.

박문대.
당신은 떨리는 목소리로 박문대의 이름을 부릅니다.
바람이 붑니다.
온전히 침체된 죽음의 여로 반대편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어깨가 젖어 듭니다.
바람이 이렇게 세차게 불면, 우산도 소용없는 법입니다.
그러니 지금 내 뺨을 타고 떨어지는 것은 눈물이 아닌 빗물이겠죠.
얼마 있지 않아 정류장 앞에 라이트를 켠 버스가 한 대 정차합니다.
버스의 번호는,
0325번.
버스의 출입구가 열립니다.
당신이 올라타기 전,
박문대가 당신의 소매를 잡아 당깁니다.

소매를 당긴 손으로 당신의 뺨을 감싸고,
말캉한 무언가가 뺨을 스칩니다.

그러면서 당신의 등을 꾹 밀어버리네요.
그의 얼굴엔,
단 하나의 미련도 없습니다.
무척이나 개운한 표정으로 당신을 보며 웃고 있어요.



그는 간지러운 입맞춤에 기어코 웃음을 내뱉습니다.



당신이 버스에 올라타면 버스의 문이 닫힙니다.
당신은 급하게 뒷좌석으로 내달립니다.
창문을 열고, 우산을 든 채 당신을 올려다보는 박문대와 두 눈을 마주 합니다.

사랑했어.
그렇게 속삭이는 박문대에게 무어라고 답을 건네기도 전에 버스는 움직입니다.
수몰되는 세계에서,
수몰될 듯 슬프기만 한 버스가 빗길을 가르고 내달리기 시작합니다.

이제는 당신을 제외한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는 버스 안.
이 주체 못할 슬픔을 어떻게 견뎌내라는 걸까요.
이제 옆 자리에 더는 네가 없는데,
너 없는 삶 속에서 나는 억겁 같은 하루를 또 견뎌내며 살아가야 할 텐데…
그 각오를 또 해내야 하는데…
이런 커다란 삶을 안겨주고서
마지막으로 하는 말이
사랑했다,라니.
이 슬픔을 어떻게 씻어내야 한다는 말인가요.
넘쳐흐르는 슬픔에 턱 끝에 맺힌 눈물을 훔쳐냅니다.
뺨 위로 번지는 눈물을 닦아내고, 또 닦아냅니다.
입술 바깥으로 침잠되어있던 고통이 터집니다.
많이 보고 싶을 거예요.
다시 만나기 전의 수많은 시간을 버텨내며
나는
아주 많이,
당신이 보고 싶을 겁니다.
눈물에 흠뻑 젖어든 소매는 하얗습니다.
어느 사이엔가 환자복 차림입니다.
무겁게 내려간 고개에,
품에 안겨있던 국화 꽃잎 위로 시선이 떨어집니다.
까맣게 시들어있던 국화는 물기를 머금어 생생합니다.
다시 피어난 겁니다.
나의 삶을 향해 되돌아가는 이 버스 안에서 말이에요.
국화는, 붉습니다.
이제 더는 흰 국화가 아닌 붉은 국화예요.
신재현.
떠올랐나요?
붉은 국화의 꽃말은,
당신은 품 한가득 국화꽃다발을 끌어안습니다.
그 위에 호흡을 묻고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냅니다.
삐.
삐.
삐.
익숙하고도 적막한 빗소리,
그 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희미한 기계음에 눈꺼풀을 떠올립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흰 천장.
소독 약 냄새.
밝은 빛.
아, 바뀐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이 바로, 박문대가 인도해준 나의 목적지입니다.
놀란 간호사의 목소리,
커튼을 치고 급히 들어서는 의사의 얼굴.
난잡하게 흩어지는 내 삶의 빛.
네가 없는 너의 기일.
내가 살아 돌아온 비 내리는 밤의 병실.
눈가에 고여 있는 뜨거운 물기 탓에 눈이 아픕니다.
가슴에 담기 벅차고,
감은 눈 아래 떠올리기 힘들고,
그 삶이 짧았기에 찬란했고 슬픈 이름이 있습니다.
안녕, 박문대.
안녕, 류건우.
안녕, 내 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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